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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대출 문 닫는다고 빚이 사라지나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금융당국이 연간 대출 증가율 목표를 강하게 밀어붙이자 은행들은 연말을 앞두고 전세대출과 집단대출까지 문턱을 높였다. 잔금을 앞둔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커지자 당국은 결국 4분기 전세대출로 총량 목표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공급을 막아도 이미 발생한 자금 수요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정책 스스로 확인된 셈이다.
대출 문을 막았을 때 돈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불 보듯 뻔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저축은행 대출 증가 배경으로 부동산 매입과 생계자금 수요뿐 아니라 은행권 대출 규제 강화의 영향도 꼽았다. 은행·상호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중신용자는 5% 안팎의 금리를 적용받지만 그러지 못하면 15% 안팎을 부담할 수 있다는 ‘금리 단층’도 지적했다. 한은이 규제 차익에 따른 풍선효과를 경계한 이유다.

5년이 지난 지금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8조3000억 원 늘었고, 이 가운데 은행권 증가액만 7조6000억 원에 이르렀다. 다른 업권의 문을 조인다고 자금 수요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조건이 나은 은행으로 다시 몰리는 모양새다.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는 이미 약 80%가 찼고 3곳은 목표치를 넘어섰다. KB국민은행은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한도를 6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췄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모집인 접수를 중단하는 등 문턱을 높였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대출 셧다운’은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풍선효과는 보험권으로 번지고 있다. 주요 보험사들이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한 데 이어 신용대출 한도를 낮추고 보험계약대출까지 조이고 있다. 보험계약대출은 가입자가 쌓아둔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급전을 마련하는 수단이다. 이것마저 막히면 생활비나 치료비, 사업자금이 필요한 차주는 더 높은 금리의 저축은행 대출이나 카드론 등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연간 총량에 맞춰 대출 문을 열고 닫는 방식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소득과 담보, 상환능력이 같은 차주라도 연초에 신청하면 대출을 받고 총량이 소진된 하반기에 신청하면 거절당할 수 있다. 가계부채 관리가 차주의 위험을 심사하는 제도가 아니라 신청 시점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선착순 금융’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당국은 고액 사내대출이 금융권 대출과 결합해 주택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은행과 보험사 대출을 막으면서 기업에 사내대출까지 자제하라고 요구하면 정상적인 자금조달 통로가 어디에 남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빚투'와 다주택 투기 수요는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주택 구입과 전세, 생활비, 치료비 등 실수요까지 동일한 총량 잣대로 눌러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공급 축소가 아니라 차주의 소득과 상환능력, 대출 목적을 구분한 공급이다. 실수요자에게는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투기성·고위험 대출에는 더 강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대출을 못 받게 한다고 돈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요를 외면한 규제는 부채를 없애는 대신 더 비싼 부채와 금융 불평등을 키운다. 가계부채 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세게 잠갔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곳에 감당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자금을 공급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ng@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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