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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⑨ 창신메모리(CXMT)… 시진핑의 꿈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2018년 4월 26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위치한 메모리 반도체 기업 YMTC(양쯔메모리) 공장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해 미국산 부품 공급을 차단하는 가혹한 제재를 발표하며 중국 ICT 생태계의 목을 조여오던 일촉즉발의 시기였다.
시진핑은 도열한 임직원들에게 결연한 어조를 일장 연설읋 했다.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약하면 덩치가 아무리 커도 강한 사람이 될 수 없다. 핵심 기술은 구걸해서 얻을 수 없으며, 반드시 우리 자신의 손으로 독자적인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이른바 중화민족의 '반도체 굴기(崛起)'를 전 세계에 선포한 역사적 에피소드이자, 미국의 기술 봉쇄에 맞서 국가의 명운을 건 전면전을 선언한 순간이었다. 시진핑 지도부는 즉각 총 3,400억 위안(약 60조 원) 규모에 달하는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일명 빅펀드)를 가동하여 돈을 쏟아부었다. 그 거대한 야망의 정점에 바로 창신메모리(CXMT·ChangXin Memory Technologies)가 서 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SMIC가 중국의 파운드리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면, 인공지능(AI)과 고성능 컴퓨팅의 필수재이자 한국이 절대적 패권을 쥐고 있던 D램(DRAM) 영역에서는 창신메모리가 시 주석이 꿈꾸는 '반도체 자립의 꿈'을 실현할 유일한 결전병기다. 미국의 견고한 기술 봉쇄망 속에서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4위권까지 치고 올라온 창신메모리의 기세가 자못 무섭다. 창신메모리의 탄생은 중국 반도체 역사에서 가장 과감한 도박으로 꼽힌다. 2016년 당시 중국은 칭화유니그룹을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기반을 닦고자 했으나 D램 분야에서는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D램은 낸드플래시와 달리 미세화 공정의 난도가 극도로 높고, 전 세계 시장을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 등 '빅3'가 90% 이상 독점하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이다.

이교착 상태를 깨뜨린 것은 중국 안후이성의 성도인 허페이(合肥) 시 정부의 과감한 베팅이었다. 2016년 5월, 허페이시 정부 산하의 투자 플랫폼인 허페이창신투자(Hefei Changxin Investment)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기가디바이스(GigaDevice)의 창업자 주이밍(朱一明)이 손을 잡으면서 창신메모리의 전신인 '이노트론(Innotron)'이 공식 출범하였다.그 당시 주이밍은 중국 내에서 독보적인 플래시 메모리 설계 기술을 보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다. 허페이시 정부는 주이밍의 기술적 안목과 경영 능력을 보고 총 8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초기 투자 자금을 매칭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낙후된 내륙 도시였던 허페이를 첨단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지방 정부의 야망과, D램 국산화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중앙정부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였다.
창신메모리의 창업 기지는 허페이 경제기술개발구에 위치한 대규모 부지에 건설되었다. 공장의 착공과 동시에 이들은 전 세계 반도체 엔지니어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스카우트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D램 제조 기술이 전무했던 창신메모리가 초기에 기댈 곳은 결국 해외 선진 기업의 인재와 이들이 보유한 경험뿐이었기 때문이다. 창신메모리는 창업 초기부터 단순한 민간 기업이 아닌, 중국 국가 반도체 펀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국가급 프로젝트로 관리되었으며, 이는 훗날 미·중 반도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창신메모리가 생존할 수 있는 강력한 버팀목이 되었다.창신메모리의 초기 성장은 순탄치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전 세계 D램 시장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는 기존 강자들의 '특허 장벽'이었다. 아무리 공장을 짓고 장비를 들여와도, 독자적인 D램 셀(Cell) 설계 특허가 없다면 양산과 동시에 국제적인 소송전에 휘말려 파산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또 다른 D램 희망이었던 푸젠진화(JHICC)는 미국 마이크론의 기술을 탈취하려다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고 장비 공급이 끊기면서 양산 직전에 침몰한 바 있다.

푸젠진화의 비극을 목격한 창신메모리는 훨씬 우회적이고도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과거 세계 D램 시장의 강자였으나 파산한 독일 반도체 업체 키몬다(Qimonda)의 유산이었다. 키몬다는 독일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Infineon)에서 분사된 D램 전문 업체로, 한때 세계 시장 점유율 2위까지 올랐던 기술 명가였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몰아친 무자비한 치킨게임과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결국 파산 절차를 밟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기업이었다. 창신메모리는 독일 키몬다가 남긴 방대한 기술 자산의 가치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이들은 키몬다가 보유하고 있던 D램 관련 핵심 특허 및 방대한 설계 데이터 1,000만 건 이상을 합법적으로 인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사실상 아무런 기술적 기반이 없던 중국이 단숨에 글로벌 수준의 D램 설계 도면을 확보하게 된 신의 한 수이자, 합법적인 특허 방패를 얻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경쟁사들이 기술 탈취 소송을 걸어오더라도 "우리는 키몬다의 정당한 기술적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라는 강력한 법적 방어 논리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키몬다의 기술은 트렌치(Trench) 방식 중심의 구형 기술이었기에, 현대 D램의 주류인 스택(Stack) 공정에 맞게 변형하는 데에는 엄청난 고난도의 엔지니어링이 요구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신메모리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대만의 이노테라 출신 퇴직 임원과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기존 연봉의 3~5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대거 흡수하였다. 독일에 뿌리를 둔 기술 설계도 위에 한국과 대만의 초정밀 미세공정 노하우를 이식하는 이종 교배 전략을 단행한 것이다. 창신컴퓨터는 2019년 9월 마침내 19나노미터(1x) 공정 기반의 8Gb(기갑비트) DDR4 D램 양산을 공식 발표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키몬다의 특허를 기반으로 한 독자 노선이 마침내 상업적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D램 강국인 한국에 비하면 5년 이상 뒤처진 기술이었으나, 중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D램 상업 양산에 성공한 것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2022년에는 17나노미터급(1y) D램 공정 전환에 성공하며 스마트폰용 모바일 D램(LPDDR4X) 시장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미국의 강력한 수출 통제 속에서도 창신메모리는 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대거 확보하며 미세화 공정의 한계를 뚫어냈다. 비록 최첨단 EUV 장비는 사용하지 못하지만, DUV 장비를 여러 번 겹쳐 굽는 멀티 패터닝(Multi-Patterning) 공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10나노미터 중반급 D램 생산체제를 구축한 것이다.창신메모리의 비약적인 성장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추진해 온 '반도체 굴기'의 핵심 성과물이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줄곧 "핵심 기술은 구걸해서 얻을 수 없다"며 반도체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제조 2025' 전략을 밀어붙였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자국 공급망 구축의 선봉장으로 창신메모리를 키워냈다.
이 거대한 자금의 상당 부분이 창신메모리의 생산라인 증설과 연구개발(R&D)비로 수혈되었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적자를 국가 보조금과 지방 정부의 무담보 대출로 메워가며 성장하는 구조다. 수익성을 맞추지 못해도 국가의 전략적 목표를 위해 기업을 생존시키고 키워내는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의 전형이 창신메모리를 통해 구현된 것이다.시진핑 주석의 꿈은 단순히 메모리 반도체를 자급자족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국의 경제 제재나 대만 해협의 지정학적 위기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완전히 차단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중국의 군사 무기와 슈퍼컴퓨터, 그리고 국가 데이터센터가 중단 없이 가동될 수 있는 '독자적인 붉은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본질이다. 창신메모리는 그 생태계의 심장 역할을 부여받았다.

중국 내수 시장의 규모 역시 창신메모리에 거대한 온실을 제공하였다.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의 50% 이상을 소비하는 최대 시장이다. 시 주석은 정부 기관 및 공공기관, 나아가 국유기업 내에서 외국산 컴퓨터와 반도체를 퇴출하고 자국산 제품으로 대체하라는 이른바 '신촹(信創)' 정책을 강제하였다. 이로 인해 창신메모리는 기술력이 다소 떨어지고 가격 경쟁력이 부족하더라도 국유기업과 관공서라는 확실한 고정 매출처를 확보하며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과 자금을 벌 수 있었다.어 느사이 창신메모리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메이저 플레이어로 격상되었다. 창신메모리의 글로벌 D램 웨이퍼 생산 능력 점유율은 이미 10%에 육박하고 있다. 실제 매출 기준 점유율도 7~8% 대를 기록하며 미국의 마이크론을 추격할 발판을 마련하였다. 범용 D램 시장에서는 대만의 난야 등을 제치고 확고한 세계 4위 자리를 굳혔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창신메모리가 단순히 저가 PC나 가전제품용 D램에 머물지 않고,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메모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전선으로 진격을 개시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와 함께 한국산 HBM의 중국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시진핑 정부는 창신메모리에 'HBM 자립'이라는 새로운 특명을 내렸다.창신메모리는 안후이성 허페이 공장에 HBM 전용 테스트 및 패키징 라인을 구축하고, 자신들이 양산 중인 10나노미터 후반급(1z) D램을 적층하는 방식으로 HBM2 및 HBM2E 개발에 성공하였다. 비록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양산 중인 5세대 HBM3E나 6세대 HBM4와 비교하면 기술적으로 2~3세대 이상 뒤처진 구형 모델이지만, 중국 내 자체 AI 칩(화웨이 어센드 등)과의 결합을 목표로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창신메모리는 자금력의 스케일을 한 단계 더 키우기 위해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의 기술주 중심 시장인 과창판(Star Market)에 최소 43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상장(IPO)을 하면서 실탄을 더 늘리고 있다. 이 공모 자금은 고스란히 10나노미터 초반급 D램 공정 전환과 HBM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장비 구매에 투입되고 있다. 범용 D램 시장에서 치열한 치킨게임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의 무한 보조금을 등에 업은 창신메모리의 존재는 한국 기업들에게 상시적인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창신메모리의 도약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메모리 패권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대만과 일본의 추격을 압도적인 기술 '초격차(Super Gap)'로 따돌리며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꼭대기에서 막대한 부를 창출해 왔다. 경쟁자가 미세화 공정의 한계에 부딪혀 주저앉을 때, 한 세대 앞선 첨단 공정으로 전환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독일 키몬다의 무형 자산을 흡수하고 일어선 창신메모리를 필두로 한 중국의 추격은 과거의 경쟁자들과 궤를 달리한다. 이들은 시장 경제의 논리로 움직이는 기업이 아니다. 적자가 수조 원에 달해도 철저히 국가의 안보와 패권 유지를 위해 생존하며, 실패하더라도 정부가 다시 돈을 쏟아부어 살려내는 '불사조' 같은 존재다. 창신메모리의 거침없는 진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반도체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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