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책 한권의 여유] 게임의 룰을 지배해야 게임을 이긴다 ‘로비의 경제학’

로비의 경제학 /진주화 /미래의창이미지 확대보기
로비의 경제학 /진주화 /미래의창
인류는 언제부터 규제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적어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상인들이 점토판에 거래 기록을 남기던 시절부터 규칙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이 있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은 상품 거래와 채무 관계, 재산권을 규정했다. 로마제국은 도로와 항만을 운영하고자 수많은 행정 규칙을 만들었고, 중세 유럽의 길드들은 품질 기준과 영업 범위를 정했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는 순간부터 제도와 규제는 늘 함께 존재해왔다.
규제의 목적은 분명했다. 질서를 유지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시장이 커질수록 규제도 정교해졌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노동법이 등장했고, 금융시장이 성장하면서 회계 기준과 공시 제도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식품 안전 규정, 개인정보 보호법, 환경 규제, 산업 안전 기준 등 수많은 규제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는 세상이 제도보다 빠르게 변한다는 점이다. 제도는 본질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기술과 시장은 미래를 향해 움직인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규제는 종종 현실과 충돌한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일부 지역에서는 마차의 안전을 위해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깃발을 들고 걸어가야 했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는 전자상거래와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무도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혁신의 역사란 어쩌면 기술과 제도의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단어가 등장한다. 바로 '로비(lobby)'다. 우리나라에서 로비라는 단어는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은밀한 청탁이나 특혜 제공, 정경유착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그러한 부작용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진국 미국·유럽연합(EU)에서 로비는 더 제도화된 방식으로 운영되는 하나의 산업이자 민주주의적 의사소통 메커니즘으로 이해된다.
사실, 입법자나 규제기관이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는 산업의 최신 기술과 전문지식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혁신 기술이나 새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현안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 산업협회, 시민단체, 학계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정책 개선을 요구한다. 선진국 로비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좋은 로비는 특혜를 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는 활동이다. 규제당국이 현장의 현실을 이해하도록 돕고, 제도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의견을 전달하며, 새로운 산업에 맞는 법적 틀을 마련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주요 산업 발전 과정에서 로비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항공산업·반도체산업·인터넷산업·바이오산업 모두 기술 혁신만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혁신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설명했고, 규제기관은 기존 제도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기술 혁신과 제도 혁신이 함께 움직였기에 산업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결국 기업을 둘러싼 경쟁 환경은 시장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능력만큼이나 제도의 변화를 이해하고 정책 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능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최근 출간된 ‘로비의 경제학’은 바로 이와 같이 로비를 구심점으로 하는 거대 산업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밝힌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로비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업들은 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지, 그 과정이 혁신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흥미롭게 분석한다. 그리고 단언한다. 인공지능(AI) 시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 피지컬AI 기업이 지금의 눈부신 위상을 튼튼히 하기 위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로비라고. 단순히 좋고 싫다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적극 활용하고 투명화하고 기록해야 할 ‘자산’으로서 로비를 강조한다.

양준영 교보문고 eBook사업팀 차장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