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안산(鞍山·295m)은 인왕산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무악재를 이루고 솟은 산이다. 안산의 서남쪽 연희동 지역은 자작나무·산벚나무·물푸레·잣나무 등 1990년도부터 환경림으로 가꾸어 양호한 수림을 형성하고, 북동부 암반 지역은 왜소한 소나무, 산 정상부 일대는 팥배나무·상수리나무·오리나무 등이 분포하고 남동쪽으로는 아까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안산 자락길 주변에 서대문 독립공원과 형무소,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봉수대, 신라 진성여왕 시기에 창건된 봉원사 등 역사적인 명소가 가득하다. 숲 공부를 하면서 자락길은 몇 번 걸어봤어도 봉수대가 있는 정상까지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자락길과 달리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가팔랐다. 그리 높지 않은 길인데도 금세 숨이 가빠 온다. 아직은 체력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걸 보면 세월보다 무서운 것은 없지 않나 싶다. 그래도 아직은 이렇게 산을 오르내리며 자연을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산을 오르거나 여행지를 찾을 때마다 또 올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누군가는 나이 든 탓이라고도 하지만 유한한 목숨을 지닌 존재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까 싶다. 다시 올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면 눈에 스치는 풍경 하나, 귓바퀴로 고여 오는 새소리 하나도 무심할 수가 없다. 한껏 나를 낮추고 진심으로 성의를 다해 상대를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는 이따금 진지해지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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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봉수대가 있는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하며 지하철만 타고 다니느라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숲길을 걷고 산을 오르다 보면 두 발로 걷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근사한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자락길을 따라 걷다가 연세대 교정을 찾아 윤동주 시비를 둘러보았다. 시인 윤동주는 이곳 연희전문을 다녔다. 윤동주가 기숙했던 건물은 이제 윤동주 기념관이 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가 재학 시절 썼던 '서시'가 새겨져 있는 시비 앞에 누군가 놓고 간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시비 가까운 곳에 벽오동 한 그루가 열매를 달고 서 있다. 전설 속의 상서로운 새인 봉황이 깃든다는 벽오동은 참오동(오동나무)과 나무 이름이나 목재의 쓰임이 비슷하나 전혀 다른 나무다. 벽오동은 벽오동과의 식물이지만, 참오동은 현삼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벽오동은 수피가 푸른색이라서 청오(靑梧) 또는 청동목(靑桐木)이라 부르며, 참오동은 속이 희기 때문에 백동(白桐)이라 부른다. 이렇듯 수피도 다를뿐더러 꽃을 피우는 시기와 모양, 색깔도 전혀 다르고, 열매도 다르다. 특히나 돛단배, 혹은 혀를 닮은 날개는 성숙하기 전 5개로 갈라져 가운데 4~5개의 열매를 달고 있다. 잠시 벽오동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주우며 잠시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연세대 정문을 나섰다. 신촌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짧은 겨울 해인데도 참으로 많은 걸 보고 느낀 하루였다. 걸어서 독립문에서 신촌역에 이르는 동안 만상(萬象)이 흘러가고 만상(萬想)이 떠올랐던 하루였다.
이미지 확대보기백승훈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