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오피스빌딩이 500억 원에 거래됐다. 투자사는 이 거래를 어떻게 결정했을까. 대부분의 답은 '관계'에서 나온다. 건물주의 지인, 중개업자의 인맥, 금융사 담당자의 귀띔. 임대료와 공실률, 인근 빌딩과의 비교 같은 기본 정보조차 체계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수백억 원대 투자가 단편적이고 비공식적인 정보에 기대어 이뤄진다.이 시장에는 '지도'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극소수만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지도가 있을 뿐이다. 왜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수조 원 규모의 자산 시장이 여전히 아날로그로 작동하는가.
◇정보 비대칭이라는 구조적 질병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고질적 문제는 '정보 비대칭'이다. 대형 빌딩의 실제 임대료, 층별 임차인 구성, 공실 추이 같은 기본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건축물대장에는 허가 정보만 있고, 거래 사례는 일부만 공시된다. 나머지는 관계자들만 아는 비공식 지식이다.
이 구조는 의도된 것이다. 정보를 독점한 쪽이 협상력을 갖는다. 중개업자는 정보를 쪼개어 수수료를 받고, 기관투자자는 네트워크로 정보를 모으며 우위를 점한다. 시장 참여자 모두가 정보를 '공유재'가 아닌 '사유재'로 인식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정보 접근성이 낮으면 거래 비용이 증가하고, 잘못된 의사결정 확률이 높아진다. 500억 원짜리 빌딩을 샀는데 실제 임대 시세가 예상보다 10% 낮다면? 그 손실은 수십억 원 단위다. 시장 전체가 비효율의 악순환에 갇혀 있다.
◇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
"코스타(CoStar)나 RCA 같은 플랫폼이 있지 않나?" 맞다. 하지만 이들 플랫폼은 한국 시장에 적용하기 어렵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데이터 수집 방식의 차이다. 서구 시장은 공개 정보가 많고 거래 투명성이 높다. 플랫폼은 공공 데이터를 가공해 서비스한다. 반면 한국은 공개 정보가 제한적이다. 실제 임대료, 임차인 구성, 건물 운영 상태는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책상에서 데이터를 취합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둘째, 시장 특성의 차이다. 글로벌 플랫폼은 국가 단위나 대도시 수준의 거시 데이터에 강하다. 하지만 한국 투자자들이 필요한 건 미시 데이터다. 강남구 삼성동 특정 빌딩의 층별 임대 현황, 인근 빌딩과의 임대료 비교, 최근 3년간 공실률 추이. 이런 디테일이 투자 의사결정을 좌우한다.
결국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는 '현장 밀착형' 데이터 플랫폼이 필요하다. 발로 뛰고, 직접 확인하고, 로컬 특성을 반영하는 방식이 답이다.
◇ 현장 데이터가 의사결정의 언어를 바꾼다
'좋은 데이터'의 조건은 세 가지다. 정확성, 적시성, 맥락성. 정확성은 검증을 의미한다. 현장 실사, 공공 데이터 교차 확인, 관리업체·임차인 인터뷰까지 삼중 검증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쳐야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다.
적시성은 실시간성을 뜻한다. 작년 데이터로는 올해 투자 판단을 할 수 없다. 임대료는 매달 변하고, 공실 상황은 분기마다 달라진다. 월별·분기별 업데이트가 기본이다.
맥락성은 시계열과 비교 가능성이다. 단순히 '현재 임대료 100만 원'이라는 정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지난 3년간 어떻게 변했는지, 인근 빌딩은 얼마인지, 평균 대비 높은지 낮은지. 맥락이 있어야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데이터가 쌓이면 시장의 언어가 바뀐다.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가 아니라 "데이터에 따르면…"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투자 심의 자료에 객관적 근거가 들어간다. 의사결정의 품질이 달라진다.
◇ 변화의 신호들 그리고 남은 과제
최근 한국 시장에도 변화의 신호가 보인다. 대형 금융기관과 자산운용사들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여신 심사에 데이터를 활용하고, 포트폴리오 전략 수립 시 시장 지표를 참고한다. 글로벌 투자사들은 한국 시장 진입 시 데이터 플랫폼을 필수 도구로 요구한다.
갈 길은 멀다. 여전히 대다수 중소 투자사와 개발사는 전통적 방식에 의존한다. 데이터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비용 부담을 느낀다. 플랫폼 사업자들도 데이터 수집과 검증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더 큰 과제는 문화의 변화다. 정보 독점으로 이익을 보던 구조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투명성은 기득권에 위협이다. 데이터 플랫폼의 확산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와 이해관계의 재편을 의미한다.
왜 아시아, 특히 한국에 상업용 부동산 전문 분석 툴이 필요한가. 이 시장이 여전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조 원 규모의 자산이 거래되는 시장이 관계와 추측에 의존한다는 건 비정상이다. 데이터 플랫폼은 시장을 '보이게' 만든다.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의사결정의 품질을 높이며, 거래 효율성을 개선한다. 투명한 시장은 더 많은 참여자를 끌어들이고,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시장 전체가 성숙한다.
우리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전환점에 서 있다. 관계에서 데이터의 시대로.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가 시작됐다. 보이지 않던 도시의 가격표가 하나씩 붙고 있다. 이제 질문은 '왜 필요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정착시킬 것인가'다. 시장의 미래는 투명성을 선택한 자들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