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미혼에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는지라 딱히 대출이 있지도,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카드론이라 한들 대출 규제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한도가 나오는 건 다소 의외였다. 물론 7월부터 본격 시행한 ‘스트레스 DSR 3단계’로 인해 대출한도가 연봉 이내로 제한된 것은 맞다. 하지만 기대출이 전혀 없다 보니 제도상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감상 한도는 여전히 넉넉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규제의 사각지대보다 더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일률적 적용’ 방식이다. 현행 대출 규제는 차주의 세부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다. 소득이 적거나 많거나, 자영업자거나 직장인이거나 모두 같은 규제를 받는다. 이런 구조는 규제 효과를 고르게 미치는 대신, 대출 여력이 큰 고소득·고신용 차주에게는 오히려 더 많은 대출 기회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는다. 같은 규제가 모든 차주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실제 체감 강도는 차주의 소득·신용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금융기관의 대출 행태를 보면 이런 왜곡이 더 분명해진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의 지난 7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보다 1조9111억 원이나 늘었는데, 대부분이 고신용자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 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강화하며 대출 영업에 나서고 있다. 고신용자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규제의 직접적인 부담은 중·저신용자에게 더 크게 작용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출 심사에 활용되는 지표가 제한적인 환경에서는 이런 부작용이 더 두드러진다. 신용점수와 소득이라는 단순 지표 위주로 대출 심사가 이뤄지다 보니, 차주 구분 없이 획일적으로 대출을 제한하면 선택지가 줄어드는 쪽은 언제나 중·저신용자다. 반대로 대출 여력이 충분한 고소득·고신용자는 같은 규제 환경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결과적으로 혜택을 보는 모양새가 된다. 이 불균형은 가계부채 안정이라는 규제 본래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특히 최근처럼 부동산 시장과 금리 환경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대출 규제가 시장 전반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차주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현행 방식은 일부 차주에겐 과도한 제약이, 다른 차주에겐 사실상 느슨한 제한이 되는 ‘빈틈 있는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차주의 상환 능력, 소득 구조, 대출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규제 강도를 조정하는 차등적 접근이 필요하다.
풍선효과를 우려해 무조건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차주 특성별로 규제 강도를 달리 적용하면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가계부채 관리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민층과 중·저신용자의 이용 비중이 높은 2금융권에 한해서는 시중은행 대비 다소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이런 접근은 단순히 규제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시장 전체의 안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일률적인 규제 방식에 대한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