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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워런 버핏, 95세에 경영 은퇴 선언…미국 '초고령 억만장자' 시대의 명암

90세 이상 36명 '역대 최다'…일반인보다 5배 긴 부호들의 '생명 시계'
"일이 곧 삶" 평생 현역 철학…세대교체 지연·후계 구도 불확실성 심화
버크셔 해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 버핏은 올해 말 95세의 나이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했다. 그의 은퇴는 '일이 곧 삶'이라는 철학으로 평생 현역을 고수해 온 미국 초고령 억만장자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버크셔 해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 버핏은 올해 말 95세의 나이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했다. 그의 은퇴는 '일이 곧 삶'이라는 철학으로 평생 현역을 고수해 온 미국 초고령 억만장자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로이터
지난 5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60주년을 맞은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 연단에 섰다. 다소 쉰 목소리와 굽은 등에도 시장을 꿰뚫는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여전했다. 그러나 4시간이 넘는 열변 끝에 그가 던진 한마디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바로 95세가 되는 올해 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깜짝' 은퇴 선언이었다.
그의 퇴장이 곧 '한 시대의 마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버핏을 비롯한 미국의 90대 억만장자들은 부와 명예를 넘어 '죽는 날까지 일한다'는 신념으로 경영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고 포브스 재팬이 8일(현지시각) 전했다. 막대한 부를 쌓으면 은퇴 후 유유자적한 삶을 즐길 것이라는 세간의 통념이 이들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2025년 9월 현재, 버핏을 포함해 미국 안 95세 이상 억만장자는 10명, 90세 이상은 역대 가장 많은 36명에 이른다.

◇ 멈추지 않는 거인들…103세 현역부터 미디어 황제까지

버핏의 사례는 결코 이례적이지 않다. 1982년 포브스 400대 부자 명단이 생긴 이래 모든 해에 이름을 올린 버핏처럼, 80~90대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억만장자는 수두룩하다.
미국 최고령 억만장자는 103세의 조지 조셉이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그는 자신이 1960년대에 세운 보험사 머큐리 제너럴의 회장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85세에 CEO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회사 지분 35%를 갖고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미디어 업계의 황제 루퍼트 머독(94) 역시 마찬가지다. 약 2년 전 뉴스코프와 폭스뉴스의 경영권을 아들 라클런 머독에게 넘겼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최근 후계 분쟁과 관련해 법원이 네 자녀에게 동등한 지분권을 나눠주라고 판결하면서 그의 후계 구도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헝가리 출신 투자가 조지 소로스(95)는 헤지펀드로 막대한 부를 쌓은 뒤 민주당의 거물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회 운동을 돕기 위해 약 230억 달러(약 31조 9930억 원)를 기부했으며, 뚜렷한 정치 성향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바이오래드 랩을 함께 세운 앨리스 슈워츠(99), 출판 대기업 어드밴스 퍼블리케이션스의 공동 상속인 도널드 뉴하우스(96), 워싱턴 D.C.의 부동산 재벌 애넷 러너(95)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존스 뉴욕 창립자 시드니 키멀(97), 케이블TV 사업가 앨런 제리(96), 대규모 토지와 제재업을 운영하는 아치 에머슨(96), 로즈 코퍼레이션 가문의 상속인 윌마 티시(98) 등도 90대 현역 억만장자로 활동하고 있다.
◇ '부와 장수의 상관관계'…평생 현역과 시스템의 결합

이들의 경이로운 생명력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포브스에 따르면 미국 억만장자 가운데 80세 이상은 20%에 이르러, 일반인 비율(3.8%)의 5배를 웃돈다. 부와 건강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의 장수 비결은 단순히 최고 수준의 의료 혜택을 누리는 것을 넘어선다. 첫째는 '평생 현역'이라는 확고한 원칙이다. 코크 인더스트리의 찰스 코크 회장(89)처럼 이들은 은퇴 후 여가 대신 "온종일 일하며 복잡한 문제를 푸는 것" 자체를 정신 활력과 장수의 동력으로 삼는다.

둘째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규칙이다. 102세로 세상을 떠난 '돌(Dole)'의 창업자 데이비드 머독은 생전 "125세까지 살고 싶다"며 채소와 과일 위주의 엄격한 식단을 지켰다. 마지막으로 정치, 경제, 문화계 전반에 걸친 사회의 영향력을 끝까지 유지하며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이들의 정신 건강을 지탱한다.
90대 억만장자들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현상은 현대 사회에 여러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건재는 기업의 후계 구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의료와 생활 수준 격차가 장수 격차로 이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깊게 한다.

또한, 권력과 자본이 오래 사는 초고령층에 오랫동안 집중되면서 젊은 세대 기업가나 투자자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령 사회로 들어선 한국에서도 이들의 '평생 현역' 본보기가 주목받지만, 극소수 부유층에게만 가능한 방식이라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2025년 현재 미국 90대 억만장자 현상은 단순한 '장수'를 넘어, 일이 곧 삶이라는 철학과 자본·권력·건강 체계의 모든 지원이 합쳐진 특수한 사례로 풀이된다. 이들의 존재는 현대 사회에서 부와 권력이 어떻게 세대 교체를 늦추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지를 상징하는 한 단면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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