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과 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과거와 다른 방식, 다른 흐름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회사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희망의 신호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2010년대 초부터 탄탄한 빅2 체제를 유지해왔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는 국내 화장품 산업의 개척자다. LG생활건강도 1990년대 LG화학 생활용품 사업부에서 출발해 성장해온 기업으로 현재도 LG가 약 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역사와 자본 모두를 갖춘 거대 기업이다.
그런 두 회사를, 창업한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은 에이피알이 넘었거나 넘보는 상황이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에이피알 김병훈 대표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25세에 반지하에서 창업을 시작했지만, 가상 착장 서비스 ‘이피다’, 데이트 중개 앱 ‘길하나사이’ 등은 잇따라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시행착오 끝에 2014년 패션·화장품 브랜드 ‘에이프릴스킨’을 세웠고, 2021년에는 뷰티 디바이스로 사업을 확장했다. 탄탄한 제품력, 소셜미디어 마케팅 그리고 합리적 가격대 설정 등이 성장의 기반이 됐다.
달바글로벌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스킨케어 브랜드 ‘달바(d’Alba)’를 운영하는 이 회사는 올해 5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단일 브랜드로 연 매출 3000억 원을 넘기며 K뷰티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창업자인 반성연 대표는 네이버 개발자와 컨설턴트 경력을 바탕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유통사나 벤더에 의존하기보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 아래 온라인 중심의 구조를 구축해왔다.
두 대표 모두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에 대한 안목과 실행력을 갖췄다. 결국 대기업 사이에서도 주목받는 성과를 일궈냈다. 이들의 성장 스토리는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저성장 시대에도 기민한 전략과 소비자 중심 접근이 있다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KBS1 ‘다큐 인사이트’에서 방영된 ‘인재전쟁’ 편이 떠오른다. 이 다큐는 공학 분야의 인재 육성에 주목했지만, 메시지는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모든 분야엔 정해진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 머무르기보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다.
기자는 최근 뷰티업계에서 그런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이 산업에만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산업 전반에 더 많은 도전과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순간, 사회는 다시 한번 생동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정경 기자 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