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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참 좋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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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7월이다. 7월은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무더위로 시작된다. 습도는 높고 햇볕은 따가울 정도로 뜨거워서 야외 활동 자체가 쉽지 않다. 자연스레 바깥출입은 줄어들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이나 푸른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숲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담장을 타고 오른 능소화의 요염하고 화려한 자태를 보고 있으면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어느 시인은 능소화를 두고 ‘태양을 능멸하며 피는 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나 저녁노을 빛을 닮은 연한 주황색 꽃을 오래 보고 있으면 요염하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한 느낌을 준다. 능소화라는 꽃 이름의 유래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밤을 능가할 정도로 꽃이 환하다’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는 설명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근사하게 여겨진다.

지난 주말엔 모처럼 고향에 내려가 죽마고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향에 사는 친구가 토종닭을 잡았다며 백숙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아직은 초복도 멀었으니 복달임을 할 때도 아닌데 일부러 멀리 있는 나까지 불러준 게 고마워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나무 그늘에 앉아 친구가 손수 요리한 백숙을 먹으며 옛 얘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밤나무 꽃은 하얗게 피어 친구들의 유쾌한 농담 사이로 짙은 향기를 풀어놓았다. 텃밭에선 고추와 오이, 부추와 고수, 당귀 같은 채소들이 우리들의 젊은 날처럼 싱싱했다. 개망초 위로 모시나비가 날고 배경 음악처럼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운치를 더해주던 시간이었다. 모처럼 고향의 친구들과 어울려 좋은 시간을 보내며 종종 이런 기회가 주어지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했다.

붕우유신의 붕(朋)은 죽마고우를 말하고, 우(友)는 같은 길을 가는 도반(道伴)을 뜻한다고 한다. 굳이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서로의 가슴에 늘 살아있어서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 마음이 훤하게 보이는 죽마고우들과 정담을 나누는 것처럼 참 좋은 풍경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일부러 경치 좋고 풍광 좋은 명승지를 찾아 나서야만 좋은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통하고 서로를 헤아리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멋진 장소가 되고 참 좋은 풍경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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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숲은 녹음이 짙어질 대로 짙어져 따가운 햇빛을 피해 숲 그늘에 들면 한낮에도 어둑하다. 다리를 다친 탓에 한 달 넘게 좋은 친구들, 자연과의 만남에 굶주려 있던 나는 천천히 걸으며 고향의 꽃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길섶에 줄지어 선 개망초꽃과 그 위를 날았다 앉기를 반복하는 암먹부전나비를 쫓다가 풀숲에서 홰를 치고 날아오르는 산 꿩에 놀라기도 하고 보라색 도라지꽃에 취해 바라보기도 했다. 고샅길을 걷다가 어느 집 울 밑에서 보라색 구기자꽃을 보고는 반가웠다. 구기자는 가짓과의 낙엽관목으로 마을 근처의 둑이나 냇가에서 자라는데 6월에서 9월 사이에 보라색 꽃을 피운다. 구기자꽃이 반가웠던 것은 어느 해인가 논산바람길을 걷다가 어느 집 울타리에 핀 구기자꽃을 보고 썼던 시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제풀에 붉어진 사과들이 탐스러운 과수원을 지나며/ 누군가 꽃보다 열매가 아름다운 게절이라고 말할 때/ 우연히 나의 눈에 띈 구기자꽃// 불로장생의 선홍색 구기자 열매/ 제아무리 고와도/ 나 없이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항변하듯 피어 있던 구기자꽃/ 그 보랏빛에 찔려/ 온종일 가슴 아리던 날” -나의 졸시 ‘구기자꽃’ 부분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꽃이 없이는 열매도 맺을 수 없고, 열매 없이는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도 없다. 이 뜨거운 여름도 가을로 가기 위한 과정이고, 꽃이 피는 것 또한 열매를 맺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다.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자신이 머무는 곳을 참 좋은 풍경으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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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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