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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초록 그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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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가 지나면서 태양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찍 시작된 장마가 한 차례 비를 퍼붓고 간 뒤 비구름이 비껴간 하늘에선 태양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거리를 지날 때면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더운 바람이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그런 중에도 꽃들은 함초롬히 피어 더위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 있는 원추리꽃이나 비비추, 백합들을 보면 이 정도의 더위쯤이야 참을 만하고, 소공원의 초록 그늘에 앉아있으면 그늘 너머 태양의 열기도 견딜 만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갈수록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심해진 탓에 폭염의 빈도와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뜨거운 햇볕 속을 걷다 보면 초록 그늘이 간절해진다. 그때마다 나는 가까운 소공원이나 나무 그늘을 찾아 잠시 쉬며 그늘을 내어준 나무들이 참으로 고맙단 생각을 한다. 도시에서 숲을 이룬 나무들은 폭염과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무는 증산작용을 통해 도심의 열을 식혀주고 그늘 효과와 지면의 반사열을 줄여 기온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를 보면 도시의 숲은 주변 도심 지역보다 지역에 따라 3도에서 7도까지 기온을 낮출 수 있으며, 가로수와 하층 숲은 보도 내 온도를 4.5도까지 낮춰 쾌적한 보행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나무들이 어울린 숲은 탄소흡수원이기도 하다. 도시에 조성한 숲은 도시의 열섬현상도 완화하고 탄소를 흡수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도 도움이 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해마다 여름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여름을 슬기롭게 나는 방법을 고민한다. 선풍기나 에어컨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그보다 나는 숲과 좀 더 친하게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소공원이나 가로수 그늘도 좋지만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가까운 숲을 찾아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걸어보는 것이 최고위 피서법이자 여름나기라고 생각한다. 나무들은 말이 없지만, 그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나무들이 들려주는 침묵의 전언을 들을 수 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들과 그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의 산란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들꽃의 향기는 한없이 감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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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다친 후로 한동안 숲길을 걷지 못했다. 기껏해야 다리를 절뚝이며 동네 골목길을 배회하거나 소공원을 찾아 새로 피어나는 꽃들을 관찰하는 게 전부였다.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나와는 무관하게 세상의 꽃들은 무수히 피고 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능소화가 피고, 화단엔 루드베키아·백합·비비추가 피어났다. 감나무엔 어느새 푸른 감들이 밤톨만큼 자라 있고 살구가 익고 모과도 제법 커져 있다. 저녁 무렵 낮게 깔린 기류가 바람을 타고 산을 내려오면 알싸한 밤꽃 향기가 밤나무 숲이 있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곤 했다.

오랜만에 둘레길을 걸었더니 한동안 힘을 쓰지 않았던 왼발이 나도 모르게 절뚝거려진다.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신기해서 늘 쓰던 몸도 한동안 쓰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난다. 이제 여름으로 접어든 숲은 한껏 푸르다. 비가 내린 탓인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훨씬 생동감 있게 들린다.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바람이 나무들의 우듬지를 쓸며 지나가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이 빠르게 지나간다. 정중동의 숲에 들면 나무와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음을 느낀다.

니체는 “인간은 수목과 같다. 나무는 밝은 곳으로 높이 올라갈수록 깊은 땅속을 향해 뿌리를 뻗어간다”고 했다. 숲에 들어 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지만 그 숲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살아가며 놓쳐왔던 나를 찾는 소중한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혼자만의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준비의 시간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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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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