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국제정치학 박사

나아가 수소 운반선(Carrier Ship) 분야에서도 울산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액화수소·암모니아·메탄올 등 다양한 형태의 수소 운송 방식이 기술 발전과 함께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울산은 수소 선박 건조, 안전한 운항 시스템 구축, 효율적인 벙커링(연료 공급) 그리고 대규모 저장 설비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합 기지로 전환할 수 있는 독보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는 울산이 단순한 생산 거점을 넘어 글로벌 수소 공급망의 핵심 노드로 부상할 잠재력을 의미한다. 대용량 수소 운반 기술은 수소 경제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이며, 울산은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울산의 수소 모빌리티는 육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 울산은 육상 수소트램, 수소 상용차·청소차, 나아가 공중의 도심항공교통(UAM) 드론 실증까지 아우르는 '3차원 수소 모빌리티 실증 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해상 수소 추진선과 운반선이 결합된다면, 울산은 육상-해상-공중을 아우르는 복합형 수소 모빌리티 클러스터를 세계 최초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수소 기술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고, 미래 모빌리티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것이다.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모빌리티 분야에서 수소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전환의 시점에서 정부 정책의 틀 또한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정부는 특정 산업단지 일부 또는 특정 산업단지를 '클러스터'로 지정하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개별 지역의 지정이 아니라 국토 단위의 대개조와 기능 재편이라는 전략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좁은 시야로 나뉜 클러스터 지정 방식으로는 수소 산업이 가진 복합적인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과거의 관행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는 담대한 정책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소 산업은 기존 산업구조에 '얹는' 보조 산업이 절대 아니다. 수소는 에너지, 화학, 조선, 물류, 모빌리티 등 이종 산업들을 관통하며 기존 질서를 완전히 '재설계'하는 핵심축이다. 울산을 포함한 해오름동맹 지역은 이 모든 산업이 이미 융합돼 있으며, 이 거대한 잠재력을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전환 지구'로 통합 설계해야 한다. 즉 클러스터는 정부가 사전에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자발적이고 유기적인 '전환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하향식 접근이 아니라 상향식 동력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새로운 정책 철학을 요구한다.
잘게 쪼개 놓고 나서 “경제성이 없다”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수소 산업의 본질은 연결성과 복합성에 있다. 정부는 이러한 구조 전환을 뒷받침할 과감한 재정 정책과 제도 인프라를 책임지고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은 수소 기반 공급망과 수요망을 자발적으로 풀어내는 실행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 두 기둥, 즉 정부의 책임감 있는 지원과 기업의 능동적인 실행이 명확히 분담될 때 비로소 산업 전환은 현실이 된다. 상호 신뢰와 협력이 이루어질 때에만 진정한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다.
울산은 단지 수소 산업의 실증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환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험대다. 수소는 단순히 하나의 에너지가 아니다. 수소는 기존 산업을 재설계하고, 대한민국의 국토를 재구성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다시 짜는 새로운 질서의 출발점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위대한 설계를 시작할 때다. 우리는 주저할 시간이 없다. 이 기회를 잡는다면 대한민국은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