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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인동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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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한낮의 태양은 후끈한 여름의 열기를 뿜어댄다. 숲은 신록을 지나 이제 초록 그늘로 짙어졌다. 일주일 전, 산에서 발을 헛디뎌 발이 삐끗하면서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발이 금세 퉁퉁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했다. 병원에 가니 골절이란다. 깁스나 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의사는 입원해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꼼짝없이 병원에 발이 묶였다. 아침마다 하던 산책도 거르고 병원 침대에 누워 TV나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따분한 일상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옥상 정원에 올라가 바람을 쐬며 작은 정원의 꽃을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짧은 입원 기간을 통해 건강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4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준 꽃이 다름 아닌 인동꽃이었다. 인동꽃은 여름 문턱에 피는 꽃이다. 인동덩굴은 우리나라 산과 들의 양지바른 곳에 자라는 덩굴성 낙엽관목으로 5m 정도까지 자란다. 인동(忍冬)은 이름 그대로 모진 겨울을 얇은 잎 몇 개로 견뎌내는 인고(忍苦)의 강한 뜻을 담고 있다. 인동꽃은 흰 꽃과 노란 꽃이 섞여 피는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었다가 며칠 지나면 노란색으로 변한다. 꽃을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부르는데 이 이름은 금빛과 은빛의 꽃이 사이좋게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은 화려하진 않아도 티 없이 깨끗한 맵시가 있고, 향기도 좋고 꿀이 많아 벌들이 즐겨 찾는다.

인동덩굴의 잎은 늦은 가을, 남녘에서는 겨울에도 잎이 붙어 있다. 줄기는 오른쪽으로 감기고, 어린 가지는 적갈색을 띠며 덩굴로 5m쯤 뻗어나가는데 줄기 속은 비어 있고 거친 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덩굴은 서로 한데 엉켜 자라는 편이지만 옆에 의지할 만한 나무가 있으면 감아 올라가고,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덮으면서 뻗어나간다. 인동꽃은 꽃송이가 피기 직전에 따서 그늘에 말리고, 잎과 줄기는 가을철에 베어서 잘게 썰어 그늘에서 말려 두고 약용으로 사용하고 차로 마시기도 한다. 금은화의 특징이라면 수정 전의 꽃은 흰색이고 꽃가루받이를 마친 꽃은 노란색을 띤다는 점이다. 수정을 마친 꽃이 노란색을 띠는 것은 색을 달리함으로써 꿀을 찾는 벌들의 헛수고를 덜어주고자 하는 배려의 마음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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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꽃은 여름 문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이어서 누구에게나 친근한 꽃이지만, 그 꽃이 새삼스레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같은 꽃이라도 바라보는 처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여름에 피는 꽃이 겨울을 견딘다는 인동(忍冬)이란 이름을 지녔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고, 은은하게 번지는 꽃의 향기도 범상치 않게 여겨지는 것도 내 몸이 아프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붓다가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했듯이 살아가는 일이 곧 수많은 파고를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이겨내어 향기로운 꽃을 피워낸 인동덩굴처럼 내게 닥친 불행을 조용히 수렴해 이 고통의 시간을 슬기롭게 견디어 향기롭게 꽃 피울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작은 풀꽃 하나 피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견디다 보면 살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극복하고 이겨내려 애쓰기보다는 참고 견디다 보면 살게 된다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불행은 커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누구나 고만고만한 고통과 시련을 겪게 마련이다. 그것을 견디고 이겨낸 자만이 인동꽃처럼 맑고 그윽한 향기를 주위에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담벼락을 타고 오른 인동덩굴에 가득 피어난 인동꽃 향기에 취해 바라보는 오월의 하늘이 높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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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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