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 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50213101656063174a01bf698f1209125250.jpg)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가 있는 어퍼 이스트와 웨스트 사이드가 만나는 곳에서 로어 맨해튼의 중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중국어 간판들이 즐비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곳이 그 유명한 뉴욕의 차이나타운이다. 뉴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다. 정통 수타면과 만두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뉴욕 차이나타운에는 두 개의 동상이 서 있다. 공자와 임칙서가 그 주인공이다. 공자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눈길을 끄는 인물은 임칙서다. 중국어로는 林則徐, 즉 린쩌쉬로 읽는다. 임칙서는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다. 1838년에 아편 수입을 막는 흠차대신으로 임명됐다. 당시 중국에서는 영국의 아편이 대량 유입되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은이 밖으로 흘러나가 국가 재정이 줄어들었다. 황제(동광제)는 아편 수입을 금지했으나 효과가 없자 임칙서를 흠차대신으로 삼아 광저우에 파견했다.
임칙서는 영국 상인들에게서 차와 교환한 아편에 석회를 묻혀 바다에 폐기해 버렸다. 이른바 호문(虎門)의 아편 사건이다. 아편 폐기에 분노한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임칙서가 전격 해임됐다. 광둥의 상인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있던 청나라 일부 관료들의 모함 때문이다. 전쟁의 결과는 영국의 압승이었다. 중국은 패전의 대가로 홍콩을 할양하기에 이른다. 임칙서가 광둥에서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면 영국을 격퇴했었을 수도 있었다고 후세의 중국인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임칙서는 호문의 아편 사건을 계기로 중국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중국의 역사서들은 임칙서를 외세의 침략에 신음하던 중화민족의 호기를 만방에 떨친 정치가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외세에 항거하는 조직을 결성해 아편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는 한편 선진 문물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낡은 중화사상에서 벗어나 "세계로 시야를 넓힐 것"을 중국인들에게 외친 최초의 지식인이다. 임칙서가 일으킨 호문의 소각 사건은 중국 민중들에게 외세 속에서 주체성을 지켜나가는 중화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킨 도화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뉴욕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이 임칙서 동상을 세운 것도 외세에 맞서 싸운 그의 기개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요즘 미국과 중국이 시끄럽다. 트럼프가 멕시코·캐나다·중국 3개국을 대상으로 관세폭탄을 터뜨리면서 무역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트럼프는 이들 세 나라가 펜타닐이라는 마약진통제를 미국에 퍼뜨리고 있다면서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고위 경제고문인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부과한 전면 관세가 '무역전쟁'이 아닌 '마약전쟁'이라고 밝혔다. 해셋 위원장은 CNBC방송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이 아니라고 100% 분명히 밝힌 행정명령을 읽어봐야 한다"며 "이건 펜타닐 마약 전쟁"이라고 말했다. 해셋 위원장은 “지난 한 해 동안 베트남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이 펜타닐 때문에 사망했다”면서 “캐나다·멕시코·중국이 펜타닐 근절에 협조하지 않으면 무역전쟁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관세폭탄 발효 직전에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고율 관세 시행을 한 달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당초 4일(현지 시간)부터 캐나다·멕시코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지만 막판 협상에서 두 나라 모두 부과 시점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글을 올려 “나는 방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좋은 통화를 했다”며 “제안된 관세는 최소 30일간 유예된다”고 했다.
트뤼도는 이어 “캐나다는 13억 달러 규모의 국경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며 “약 1만 명의 일선 요원들이 국경 보호를 위해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캐나다는 ‘펜타닐 차르’를 신설하고, (마약) 카르텔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며, 조직범죄와 펜타닐·자금세탁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캐나다 합동 타격부대를 출범시킬 것”이라면서 “조직범죄와 펜타닐과 관련한 새로운 정보지침에 서명했고, 여기에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트뤼도 총리의 이 같은 발표는 이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이후 이뤄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뤼도 총리와의 두 번째 통화 이후 취재진에 “통화가 매우 잘 진행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방금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과 통화했다”며 “셰인바움 대통령은 멕시코·미국 국경에 1만 명의 군병력을 즉시 보내기로 동의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들은 펜타닐의 유통과 불법 이민자의 미국 입국을 막기 위해 특별히 배치될 것”이라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그리고 멕시코 고위급 대표들이 이끄는 협상을 진행하는 한 달 동안 계획됐던 관세를 즉시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셰인바움 대통령도 이날 자신의 X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일련의 합의에 도달했다”며 “관세는 지금부터 한 달 동안 유예된다”고 밝혔다.
관세폭탄 대상 3개국 가운데 멕시코와 캐나다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미국과 추가 협상을 벌이게 된다. 잘만 하면 관세폭탄 없이 넘어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는 끝내 관세폭탄을 터뜨렸다. 트럼프-시진핑 정면충돌 양상에 뉴욕 증시와 중국 상하이 증시에 비상이 걸렸다.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가상 암호화폐도 요동치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상품 전체에 10% 추가 관세를 발효했다.
중국은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對)중국 10% 추가 관세에 대응해 석유 등 일부 미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는 15% 관세를 각각 추가로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관세법 등 관련법 기본 원칙에 따라 국무원 승인 아래 오는 10일부터 미국산 일부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중국 위원회는 미국산 석탄과 LNG에는 15% 관세를 부과하고 원유, 농기계, 대형 자동차와 픽업트럭에는 10% 관세를 부과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또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구글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중국 계면뉴스는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구글에 대해 법에 따라 입건 조사가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산 상품 전체에 10%의 추가 관세를 발효한 데 따른 보복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중국이 펜타닐이라는 마약을 둘러싸고 전면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9세기 말 중국은 아편에 맞고 영국과 한바탕 전쟁을 벌였다. 지금은 중국의 마약에 영국의 후예인 미국이 맞서는 형국이다. 공격과 수비가 뒤바뀌기는 했으나 마약을 둘러싼 패권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