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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풍경의 발견- 태릉을 가다

백승훈 시인

기사입력 : 2024-09-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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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지만 요즘 바깥 풍경은 차를 타고 가며 보면 가을, 차에서 내리면 여름이다. 에어컨 잘 나오는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가을이 분명한데 차에서 내리면 땡볕이 후끈한 열기를 쏟아놓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쾌청한 하늘이 너무 좋아 드라이브를 나섰다가 태릉에 다녀왔다. 처음부터 태릉에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촉수 잘린 개미처럼 정처 없이 거리를 맴돌다가 우연히 찾아든 곳이 태릉이었다. 30여 년 전, 태릉 가까이에서 살았던 터라 지명은 익숙하지만 스쳐 지나쳤을 뿐 정색하고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권을 끊고 따갑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을 피해 얼른 숲길로 들어섰다.

태릉은 중종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의 능이다. 그녀의 아들인 조선의 13대 임금 명종의 강릉을 합쳐 태강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강릉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봄가을에만 개방하므로 강릉은 다음으로 미루고 태릉만 돌아보았다. 태릉은 왕릉과 더불어 넓은 자연 녹지 그리고 조선왕릉 전시관이 잘 갖춰져 있어 많은 사람이 다녀간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승하하면 최고의 예를 갖추어 국장을 치렀다. 이를 위해 3개의 임시관청을 두었다.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이 그것이다. 빈전도감은 빈전을 설치하고 국장에 필요한 모든 일을 맡아 처리하고, 산릉도감은 왕릉 조성과 관련된 일을 담당하고, 국장도감은 발인 절차에 필요한 업무를 담당했다.

매표소를 지나면 곧바로 만나게 되는 조선왕릉 전시관에는 조선의 국장에 관한 내용이 모형과 사진, 글, 유물 등으로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빈전에 왕의 시신을 안치하는 내용을 포함해 왕릉을 조성하고, 조성된 왕릉에 왕을 모시는 일까지 자세하게 알 수 있다. 특히 정조의 국장 행렬 중 대여(大輿)를 전시한 모형은 조선 국장의 면모를 살펴보기에 충분하다.
중종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는 중종의 옆자리에 묻히길 원했으나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종이 세상을 떠나고, 인종이 9개월 만에 승하하자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1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문정왕후는 그때부터 수렴청정하며 왕위의 독재자로 군림, 명종이 20살이 될 때까지 권력을 휘둘렀다. 문정왕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데 수렴청정 기간에 매관매직이 빈번했고, 임꺽정의 난이 일어난 시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결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정왕후를 말할 때 ‘여인천하’ ‘여왕’이라는 수식어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큰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시대를 호령했던 여장부는 능침 속에 잠들어 있다. 묘역을 지키고 선 노송들과 초록의 잔디, 파란 하늘 위로 떠가는 흰 구름만 무심하다. 부귀영화도 생전의 일일 뿐 모든 죽음은 더 이상 말이 없고 고요 속에 장엄하기만 하다. 묘역을 지키고 선 소나무 사이로 귀룽나무 한 그루가 초록의 잎을 펼치고 서 있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새순을 틔우는 나무다. 침엽수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뒤틀린 나무둥치에 역력하다. 가을 볕이 며칠 더 내리쬐면 저 초록 잎에도 단풍이 들고 곧 가을이 손님처럼 찾아오리라.

누군가 벤치 위에 모아놓은 솔방울이 다소곳이 햇볕을 쬐고 있다. 작살나무의 보랏빛 열매가 꽃보다 곱게 느껴진다. 열매가 아름다운 계절이 가까이 와 있음을 직감한다. 먼 훗날 세인들의 평가를 받을 만큼 선 굵은 삶을 살진 못했다 해도 하루하루를 살뜰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나무의 열매들이 가르쳐 주는 듯하다. 당신의 바구니엔 어떤 열매가 담겼는가. 나의 빈 바구니를 가만 떠올린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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