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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기 맞아 돌아본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혁신…반도체 초석 다져

1974년 반도체 진출 후 불황에도 투자…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1993년 신경영 선언, 2021년 KH 컬렉션 2만3000여점 기증
2023년 10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장 입구에 고(故) 이건희 회장의 사진과 어록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이미지 확대보기
2023년 10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장 입구에 고(故) 이건희 회장의 사진과 어록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1974년 자금난에 빠진 한국반도체에 개인 재산을 투자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은 핵심 부품을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었고, 1차 오일쇼크로 세계 반도체 기업들도 구조조정에 나서던 시기였다. 삼성 내부에도 사업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이 선대회장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삼성은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선언을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통상 18개월 이상 걸리던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짓고, 같은 해 64K D램을 개발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며 D램 시장 선두에 올라섰고, 이후 선두권을 지켜왔다.

불황기에도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1984년 경쟁사들이 4인치 웨이퍼 라인을 늘릴 때 6인치로 전환했고, 1987년 일본 업체들이 반도체 불황으로 투자를 줄일 때 신규 라인을 건설했다. 1990년대에는 8인치 웨이퍼 양산체제를 먼저 갖췄고, 닷컴버블 붕괴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차세대 기술 투자를 이어갔다.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뿐 아니라 컴퓨터·소프트웨어·로봇 등 첨단기술이 미래 산업 판도를 바꿀 것으로 내다봤다. 1987년 회장 취임 때부터 컴퓨터 활용의 변화를 예견하고, 전자·정보기술이 기존 제조업과 결합하며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질 것으로 봤다.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도 전자기술과 결합해야 경쟁력을 얻을 수 있고,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로봇은 단순한 생산자동화 설비가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산업구조를 바꿀 기술로 봤다. 1990년대에 이미 로봇이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에게는 창조적인 일이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선대회장은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로 인재를 꼽았다. 자본과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능력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론을 바탕으로 국적과 출신에 관계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90년에는 직원이 해외에서 장기간 생활하며 현지 언어와 문화, 시장을 익히도록 급여와 교육비, 체류비를 지원하는 지역전문가 제도를 도입했다. 비서실이 20여명 선발안을 보고하자 이 선대회장이 규모를 키우라고 지시해 200여명이 파견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회사가 키운 직원이 퇴사하더라도 결국 국가에 기여하는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 투자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 선대회장은 기술과 인재를 확보해도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며 양적 성장에 집중하던 경영방식을 바꿀 것을 주문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발언으로 알려진 신경영은 제품 품질뿐 아니라 사람·조직·제도·기업문화까지 혁신하자는 것이었다.
1993년 7월에는 오전 7시 출근·오후 4시 퇴근의 7·4제를 도입했다. 업무 집중도를 높이고 퇴근 후 어학과 자기계발에 시간을 쓰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생산 현장에는 불량이 나면 원인을 해결할 때까지 라인을 멈추는 라인스톱제를 도입했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는 품질 기준에 못 미친 휴대전화 등 약 500억원 규모의 제품을 폐기하는 '불량제품 화형식'을 열었다.

이 선대회장은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을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으로 여겼다. 유족은 지난 2021년 4월 이 선대회장이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KH 컬렉션'으로 불리는 기증품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전통미술과 김환기·박수근·이중섭의 근현대미술, 모네·피카소 등 해외 작가 작품이 포함됐다.

서울에서 시작한 기증품 전시는 광주·대구·청주·제주와 경남·부산·울산 등으로 이어졌고, KH 컬렉션 국내 순회전의 누적 관람객은 350만명을 넘었다.

해외 순회전은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시작해 올해 3월 시카고미술관을 거쳐 10월 1일부터 영국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서화, 근현대미술 등 2000년에 걸친 한국 예술이 소개됐다.

유덕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ude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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