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美 억만장자들, 1300억원 저택 사서 철거…땅값이 집값 압도

팜비치 해안가 명당 확보 경쟁…에스티 로더 일가 2000억원대 저택도 허물어
멀쩡한 집 재건축 반복에 환경 논란…부동산업계는 철거 전제 매물까지 홍보
지난 2025년 7월 19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기존 저택이 철거된 뒤 새롭게 건축된 주택 부지가 내려다보인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5년 7월 19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기존 저택이 철거된 뒤 새롭게 건축된 주택 부지가 내려다보인다. 사진=로이터

미국 초부유층 사이에서 수천억원을 들여 구입한 초호화 저택을 철거하고 새 집을 짓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건물 자체의 가치보다 바다를 바라보는 입지와 희소한 토지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지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고급 주택까지 철거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등 최고급 주택 밀집 지역에서 억만장자들이 1억달러(약 1322억원)가 넘는 저택을 구입한 뒤 건물을 허물고 원하는 형태의 주택을 새로 짓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화장품 기업 에스티 로더 가문의 윌리엄 P. 로더가 구입한 저택이다.

로더는 2023년 3월 미국의 유명 보수 성향 라디오 진행자였던 고 러시 림보의 팜비치 해안가 저택을 1억5500만달러(약 2049억원)에 매입했다.

당시 플로리다주 팜비치 부동산 거래 사상 최고가였다.

1990년대 초 건축된 이 저택의 본관은 약 2만4000제곱피트(약 2230㎡) 규모였다.

내부에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을 본뜬 대형 응접실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의 빌트모어 저택 도서관을 모방한 서재가 있었다.

서재 천장에는 천사 조각 장식까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로더는 저택을 매입한 지 불과 몇 달 만인 같은 해 7월까지 건물을 철거했다.

건물의 화려함이나 건축적 가치보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셈이다.

◇건물보다 희소한 땅…팜비치 초고가 저택 철거 확산

WSJ는 이 같은 초고가 저택 철거 현상이 미국의 부유층 거주 지역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플로리다주 팜비치는 억만장자 인구가 많고 바다와 접한 부지가 제한돼 있어 이러한 거래가 집중되는 지역이다.

기존 건물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보다 바다와의 거리, 조망권, 토지 면적 등이 부동산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부동산 감정평가사 조너선 밀러는 토지 가격이 높아질수록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비용이 전체 부동산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진다고 설명했다.

부지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고급 저택을 철거하는 비용조차 구매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작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우스플로리다에서 초고가 주택 건축사업을 진행하는 시공업자 로버트 버리지는 외관과 내부 설비가 멀쩡한 고급 저택도 새로운 소유자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철거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고급 가전제품과 주방 설비, 마감재를 갖춘 아름다운 집이라도 1억달러를 지출할 능력이 있는 구매자가 원하는 집과는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부유층 구매자에게 기존 건물은 보존해야 할 자산이라기보다 원하는 주택을 짓기 위해 정리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6년 된 저택도 철거…빈 땅 2600억원대에 매각

로더는 림보의 저택을 구입하기 전에도 팜비치의 다른 해안가 부지에서 주택 두 채를 철거한 적이 있다.

약 3에이커(약 1만2100㎡) 규모의 부지에 자신이 거주할 새 주택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후 림보의 저택 부지를 확보하면서 기존 계획을 변경했다.

로더는 2025년 건물을 철거한 빈 땅을 마이크로소프트와 연관된 구매자에게 약 2억달러(약 2645억원)에 매각했다.

철거한 주택 가운데 한 채는 건축된 지 불과 6년밖에 지나지 않은 건물이었다.

부동산 중개업계에서는 이처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을 다시 허무는 현상을 '이중 철거'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 주택을 지은 지 몇 년 만에 다시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로더는 이러한 거래에 대한 WSJ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5500만달러 저택 사서 허문 뒤 1억500만달러에 매각

미국 자동차용품 기업 웨더테크의 창업자 데이비드 맥닐도 초고가 저택을 철거하는 사례로 소개됐다.

맥닐은 팜비치 인근 매널러팬에서 자신의 해안가 부지 옆에 있는 미완공 저택을 5550만달러(약 734억원)에 구입했다.

그는 이후 해당 건물을 철거하고 기존 부지와 합쳐 올해 1억500만달러(약 1388억원)에 매각했다.

맥닐은 지난해 7월에도 3600만달러(약 476억원)를 들여 약 9000제곱피트(약 836㎡) 규모의 주택을 구입한 뒤 철거했다.

이 집은 2004년께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는 철거한 부지에 운동시설과 녹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맥닐은 해당 주택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오래된 설비와 미뤄진 보수 작업 등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적인 주택으로 개조하려면 약 1000만달러(약 132억원)의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철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집과 인접한 부지가 매물로 나오면 감당할 수 있는 한 구입한다는 원칙도 밝혔다.

다른 사람이 인접한 땅을 사들여 공사를 진행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설명이다.

◇1850억원 저택도 철거 전제 매물로 등장

초부유층의 재건축 수요가 증가하면서 부동산 중개업계의 매물 판매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중개업자들은 기존 고급 저택을 철거한 뒤 새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부지로 홍보하는 사례를 늘리고 있다.

빈 땅에 새로운 저택을 지었을 때의 모습을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이미지나 영상도 활용하고 있다.

다만 매도인들의 반감을 피하기 위해 '철거 대상'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적응형 재활용'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부동산 중개업체 서한트의 게리 포러는 최근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고 머리 굿먼 부부의 저택을 1억8500만달러(약 2446억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1980년대에 지어진 이 집은 상태가 양호하지만 지역 중개업자들은 구매자가 더욱 현대적인 주택을 짓기 위해 철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해당 부동산은 약 2에이커(약 8100㎡)의 해안가 부지에 분홍빛 건물과 테니스장이 들어선 대규모 저택이다.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도 플로리다주 노스팜비치의 저택을 1억6500만달러(약 2182억원)에 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1990년대에 지어진 이 저택은 침실 7개와 와인 보관실을 갖추고 있으며 상태도 양호하다.

그러나 매각을 담당하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초부유층 구매자 상당수가 자신만의 취향을 반영한 주택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재개발이 가능한 부지로 홍보하고 있다.

◇초호화 저택 철거에 탄소배출·건축폐기물 논란

멀쩡한 고급 주택을 철거하고 더 큰 건물을 새로 짓는 현상이 확산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환경 컨설팅업체 WAP서스테이너빌리티의 윌리엄 패덕은 기존 저택의 철거와 재건축이 상당한 탄소배출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업체는 1만제곱피트(약 929㎡) 규모의 주택을 철거하고 3만제곱피트(약 2787㎡) 규모의 주택으로 교체할 경우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이 미국의 일반 가정 약 25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과 관련된 탄소배출량에 해당한다고 추산했다.

팜비치 보존재단의 대니엘 델솔은 불필요하게 건물을 철거한 뒤 건축자재를 매립지로 보내는 행위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건설업계에서는 철거 과정에서 모든 자재가 폐기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시공업자 버리지는 자신이 담당한 철거 현장에서는 전체 자재의 약 25%만 매립지로 보내진다고 설명했다.

가전제품과 주방 수납장을 기증하고 콘크리트와 금속 등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별도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초호화 저택 철거에 따른 환경 부담을 둘러싸고 주택 보존의 필요성과 소유자의 재산 활용 권리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전역으로 확산…일반 고급 주택 시장에도 영향

WSJ는 저택 철거 현상이 팜비치의 억만장자들에 국한되지 않고 건축 가능한 토지가 부족한 미국의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텍사스주 휴스턴의 벙커힐빌리지에서는 매물의 15% 이상에 재건축이나 토지가치와 관련된 표현이 포함돼 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의 피밋힐스에서는 그 비율이 6.67%로 나타났다.

이 지역들은 오래된 주택을 철거하고 현대적인 주택으로 다시 짓는 사례가 증가하는 곳이다.

플로리다주 데스틴 인근에서는 은퇴한 유통업체 경영진 제이미 둘릭과 크리스틴 스콧이 2020년 해안가의 철거 예정 주택을 370만달러(약 49억원)에 구입했다.

두 사람은 5년에 걸쳐 기존 집을 철거하고 현대적인 새 주택을 지었다.

원하는 지역에서 매입할 수 있는 유일한 해안가 부지였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했다는 설명이다.

완공된 주택은 현재 1890만달러(약 250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이들은 또 다른 철거 대상 주택도 찾고 있다.

마이애미의 부동산 중개업자 디나 골든테이어는 일부 부유층 고객들이 지은 지 10년도 지나지 않은 주택의 디자인에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객들이 원하는 주택을 찾지 못하면 기존 건물을 철거할 수 있는 부지로 관심을 옮긴다고 말했다.

WSJ는 이러한 초고가 부동산 시장에서 건축물의 고급스러움이나 보존 상태보다 대체하기 어려운 토지의 입지가 더욱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