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숫자만 놓고 보면 축포를 터뜨려야 할 성적표였다. 애플은 7~9월 회계연도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 늘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주가는 정규장에서 1.83% 밀린 데 이어 시간외 거래에서 한때 4%까지 곤두박질쳤고, 결국 328.81달러로 마감했다. 여섯 차례의 도전 끝에 겨우 안착했던 시가총액 5조달러 고지도 다시 내주었다. 사상 최대 매출과 주가 급락이 한날 공존하는 이 역설이야말로 지금 애플이 처한 처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엄밀히 말해 이번 발표는 지난 분기 실적의 쇼크가 아니라 다음 분기 전망의 쇼크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지나간 석 달이 아니라 다가올 석 달이었다. 경영진은 10~12월 분기 매출총이익률이 기존 47.9%에서 45~46%대로 내려앉을 것이며, 고마진 사업인 서비스 부문의 성장세도 둔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투자자에게 과거의 기록은 이미 주가에 반영된 상수이고, 미래의 수익성은 아직 값이 매겨지지 않은 변수다. 그 변수가 꺾이는 신호를 보였으니 실적이 아무리 화려해도 '어닝 쇼크'라는 이름표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컨퍼런스콜이 각별한 무게를 지니는 이유는 무대에 선 인물에 있다. 스티브 잡스와 팀 쿡에 이어 지난 9월 지휘봉을 넘겨받은 존 터너스 최고경영자에게 이번 발표는 첫 실적 보고였다. 새 최고경영자의 첫 컨콜은 단순한 숫자 발표가 아니라 시장과 맺는 첫 약속이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회사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서 터너스와 케반 파레크 최고재무책임자가 꺼내 든 첫 화두가 '원가 압박'이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비전보다 방어가 앞섰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경영진이 설명한 마진 하락의 원인은 분명하다. 기존에 확보해 둔 부품 재고가 소진된 상황에서 고성능 부품, 특히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며 원가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애플만의 문제가 아니라 AI 수요가 메모리 시장을 빨아들이는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 애플은 이 부담을 덜기 위해 신제품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문제는 가격 인상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그만한 가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데 있다. 소비자가 더 비싼 값을 기꺼이 치를 만한 혁신이 없다면, 가격 인상은 교체 주기를 늘리는 역효과로 돌아올 수 있다.
바로 그 '혁신의 부재'가 이번 쇼크의 더 깊은 뿌리다. 경쟁 빅테크들이 수천억달러를 쏟아부어 복잡한 업무를 스스로 처리하는 차세대 AI 에이전트를 내놓는 동안, 애플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무게를 두며 보수적인 기조를 고수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쟁사의 고도화된 AI 비서와 달리 시리는 여전히 타이머 설정 같은 기초 기능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스마트폰이라는 범주 자체를 새로 정의했던 기업이 이제는 AI 시대의 추격자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주주 환원은 성숙한 기업의 미덕일 수 있으나, 미래 성장에 대한 투자를 대신할 수는 없다.
월가가 애플의 밸류에이션에 의문을 던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플의 주가수익비율은 36배 수준에 이르지만, 내년 순이익 성장률 전망치는 1% 안팎에 그친다. 높은 배수는 높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성장이 멈춘 기업에 성장주의 가격표를 붙여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펜하이머의 마틴 양 애널리스트가 현재의 프리미엄을 정당화할 추가 상승 여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며 아이폰 매출 회복과 서비스 반등을 선결 과제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서비스 부문의 둔화는 특히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하드웨어 판매가 정체되는 국면에서 애플의 수익성을 떠받쳐 온 것은 앱스토어를 비롯한 서비스 사업이었다. 그런데 각국 규제당국이 인앱결제 수수료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고, 핵심 파트너였던 오픈AI의 챗GPT 앱마저 앱스토어 생태계를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플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힘의 원천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하나로 묶은 폐쇄형 생태계였다. 그 통제력이 규제와 경쟁이라는 양방향의 압력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마진 몇 퍼센트포인트보다 더 근본적인 위협이다.
물론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첫 폴더블 스마트폰인 '아이폰 듀오'에 사전 주문이 몰리며 초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희망의 근거다. 애플이 여전히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다만 폴더블은 애플이 새 시장을 연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시장에 뒤늦게 합류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계도 뚜렷하다. 일회성 신제품 효과를 넘어설 새로운 캐시카우를 찾는 일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컨콜이 던진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터너스의 애플은 무엇으로 다음 10년을 먹고살 것인가. 잡스는 혁신으로, 쿡은 운영의 탁월함과 생태계 확장으로 각자의 시대를 증명했다. 터너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시장은 원가 상승의 해명이 아니라 성장의 서사를 듣고 싶어 한다. 첫 컨콜의 쇼크가 일시적 성장통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한 시대가 저무는 전조로 기록될지는 지금부터 그가 내놓을 답에 달려 있다. 사상 최대 매출이라는 성적표가 오히려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그 숫자가 정점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