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등급 회사채 전자거래 비중 45%서 65%로 확대 예상…시장 급변·오작동 위험에 인간 감독 필수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월가에서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채권 트레이더의 업무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들이 시장 분석과 투자 기회 발굴에 AI를 활용하는 데 이어 실제 채권 거래까지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숙련된 금융전문가들의 역할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AI가 동일한 시장 신호에 한꺼번에 반응할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AI 도입을 확대하면서도 최종적인 거래 판단과 위험 관리에는 인간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월가의 대형 은행과 전자거래 플랫폼들이 AI 에이전트를 채권 거래 업무에 도입하면서 향후 수년간 미국 회사채시장의 거래 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마이클 로버츠 HSBC 기업·기관금융 부문 책임자는 “앞으로 2년 안에 AI 에이전트가 월가 은행에서 채권 거래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AI 시스템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숙련된 인간 트레이더가 거래 과정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회사채 하루 거래 82조원…AI 도입에 전자거래 확대
미국 회사채시장은 AI가 거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대표적인 금융시장으로 꼽힌다.
금융시장 조사기관 크리실 콜리션 그리니치에 따르면 미국 회사채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액은 약 620억달러(약 82조2000억원)에 달한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AI 활용이 확대되면서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의 전자거래 비중이 현재 45%에서 향후 수년간 65%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고수익 회사채의 전자거래 비중도 현재 수준의 두 배인 5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조르니차 토도로바 바클레이스 채권·외환·원자재 부문 테마 리서치 책임자는 “금융기관 고객들과의 논의를 통해 AI가 실제 거래를 실행하는 시대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지는 않겠지만 AI를 활용한 거래 확대는 결국 현실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금융기관들은 AI 에이전트를 주로 정보 수집과 데이터 분석, 복잡한 회사채 계약조건 검토, 뉴스 요약 등에 사용하고 있다.
거래에 앞서 투자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거나 채권을 선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도 활용한다.
AI가 맡는 업무가 늘어나면서 금융기관들은 AI 기술에 익숙한 신입 트레이더와 계량분석 전문가의 채용도 확대하고 있다.
◇트레이드웹, 2조6000억원에 트루미드 인수…AI 거래 경쟁
전자거래 플랫폼 업체들도 AI를 활용한 채권 거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와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
세계 85개국에서 3000곳 이상의 고객을 확보한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은 AI 기반 거래 지원 서비스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지 콘린 트레이드웹 글로벌시장 전략·솔루션 책임자는 고객들이 거래 전후 분석뿐 아니라 다양한 거래 방식에 따른 비용 비교, 거래 상대방 추천,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채권 선정 등에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레이드웹은 현재 미국 회사채 전자거래 플랫폼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트레이드웹은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업계 3위인 트루미드홀딩스를 약 19억7000만달러(약 2조61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를 통해 회사채 전자거래 규모를 확대하고 AI 기반 거래 서비스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콘린 책임자는 “AI가 발전하더라도 인간 트레이더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황은 예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오랜 기간 구축해온 거래 관행을 지나치게 빠르게 바꾸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AI가 채권 매매 주문까지 작성…자동 거래 실행도 가능
AI의 역할은 단순한 투자정보 제공에서 실제 거래 실행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채권 전자거래 플랫폼 LTX는 지난 6월 기존 채권 분석 프로그램인 본드GPT에 AI 에이전트 기능을 추가한 '에이전틱 본드GPT'를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사전에 정해진 조건에 따라 채권 매매 주문서를 작성하고 인간 트레이더를 대신해 거래를 개시할 수도 있다.
복잡한 회사채 계약이나 구조조정 관련 문서를 분석해 투자 기회를 찾는 기능도 제공한다.
특히 부실기업의 채무 재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격 차이나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권을 찾아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 신용위험이 가장 높은 CCC 등급 회사채의 평균 신용스프레드는 지난달 말부터 1000bp(10%포인트)를 웃돌고 있다.
이같은 수준은 일반적으로 높은 채무불이행 가능성과 구조조정 또는 투자손실 위험을 시사한다.
채권 투자자들은 에이전틱 본드GPT에 CCC 등급 채권의 스프레드가 전 거래일 종가보다 50bp 이상 확대될 경우 이를 알려달라는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
투기등급 채권 가격이 전날보다 1포인트 이상 상승하거나 하락할 때 경고를 보내도록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신용등급이 BBB 이상인 10년 만기 산업채권에서 신용스프레드가 85bp 이상이고 500만달러(약 66억원) 이상의 매도 물량이 나오면 매매 주문서를 자동으로 작성하도록 지시할 수도 있다.
짐 크비아트코프스키 LTX 최고경영자(CEO)는 AI 에이전트를 채권 거래 데스크에 인간 보조 직원을 채용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AI 거래 확산에 동시 매도 위험…금융시장 변동성 증폭 우려
AI 에이전트는 기존에 며칠씩 걸리던 분석과 자료 처리 업무를 몇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기관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실제 거래를 전적으로 AI에 맡기는 데는 여전히 신중한 분위기다.
금융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AI가 생성한 분석 결과는 인간의 재확인이 필요하며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내부 규정 때문에 AI 에이전트 사용 자체가 제한되기도 한다.
특히 여러 AI 시스템이 같은 시장정보를 분석하고 동일한 판단을 내릴 경우 금융시장 전체의 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위험이 제기된다.
바클레이스는 AI 에이전트들이 같은 데이터와 시장 신호에 반응해 동시에 거래를 실행하면 일시적인 시장 급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여러 AI 모델이 특정 회사의 신용상태 악화를 동시에 감지하면 해당 회사채의 투자 비중을 줄이기 위해 일제히 매도 주문을 낼 수 있다.
이 경우 인간 트레이더가 개입하지 않으면 대규모 매도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채권 가격 하락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 채권 자동매매 시스템이 금융시장 불안기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경험도 AI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근거로 거론된다.
AI 시스템의 성능이 개선되고 있지만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존 로이드 야누스헨더슨 글로벌 멀티섹터·회사채 부문 책임자는 “AI를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판단을 보완하는 도구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AI 에이전트가 채권 트레이더의 일부 업무를 대신하는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거래 위험을 통제하고 시스템의 판단을 검증하는 숙련된 금융전문가의 역할은 계속 중요할 것으로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