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고소득국 기준에 근접…WSJ "글로벌 사우스 영향력 유지하고 국제사회 의무 부담 줄이려는 전략"
이미지 확대보기중국이 세계은행의 이른바 ‘고소득국’ 기준을 충족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최대 수출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선진국 지위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개발도상국의 대표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편이 외교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이르면 내년 중 세계은행의 고소득국 분류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지만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세계 부유국들과 같은 집단으로 묶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중국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면 국제기구에서 개발도상국을 대표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고 일부 국제적 의무에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인당 국민총소득 1만4230달러…고소득국 문턱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4230달러(약 1895만원)였다.
고소득국 분류 기준인 1만4375달러(약 1915만원)보다 불과 145달러(약 19만원) 낮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각국의 1인당 GNI를 기준으로 △저소득국 △중하위소득국 △중상위소득국 △고소득국으로 구분한다.
GNI는 한 나라의 거주자와 기업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합산한 지표다. 세계은행은 환율 변동의 영향을 완화하는 별도 환산 방식을 적용해 국가별 소득 수준을 비교한다.
중국은 현재 중상위소득국에 해당하지만 2026년 소득을 기준으로 한 다음 분류에서는 고소득국에 진입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필립 셸레컨스 유엔개발계획(UNDP)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2026년 고소득국 기준은 1만4554달러(약 1938만원)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이 기준을 넘으려면 1인당 GNI가 약 2.3% 증가하면 된다. 이는 중국의 과거 소득 증가율보다 낮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내년 7월 2026년 소득 자료를 토대로 새로운 국가별 소득 분류를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은 지난 2010년 중상위소득국으로 올라섰다. 같은 해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
셸레컨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소득 수준을 크게 끌어올린 점을 높이 평가했다.
◇ '글로벌 사우스 대표' 자처…선진국 지위에는 거리
중국이 고소득국 진입 가능성에도 개발도상국 지위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미국과의 국제적 영향력 경쟁이 있다.
중국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포괄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주요 대변자를 자처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4년 유엔 행사에 보낸 영상 연설에서 중국이 언제나 글로벌 사우스와 개발도상국의 일원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WSJ는 “중국은 개발도상국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함으로써 서방 선진국과 차별화된 정치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기구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면 일부 기후변화 대응 기금에 대한 기여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등 실질적인 이점도 있다.
국가의 경제 규모뿐 아니라 국제기구에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가 외교적 협상력과 의무 부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금융그룹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선진국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WSJ에 따르면 세계은행이 정하는 고소득국 지위가 곧바로 모든 국제기구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은행은 고소득국과 중상위소득국 등 소득 수준에 따른 분류만 사용하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구분은 적용하지 않는다.
◇ WTO 개도국 특혜는 포기…정체성은 유지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을 신흥·개발도상 경제권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유엔 역시 중국을 개발도상국으로 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회원국이 스스로 개발도상국 지위를 선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제도에 따라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지난해 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에 부여되는 특별대우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위상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됐다.
중국은 세계 최대 수출국이며 연간 무역흑자는 1조달러(약 1332조원)를 넘는다.
이 같은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개발도상국에 제공되는 혜택까지 누리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져 왔다.
중국은 WTO 협정 이행 기간을 더 길게 인정받는 등의 특별대우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개발도상국이라는 지위와 정체성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WSJ는 중국이 국제무역 질서에서 선진국과 비슷한 의무를 일부 수용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대표라는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 세계은행 대출 2031년 종료…경제적 위상 변화
세계은행과 중국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은행은 중국에 대한 대출을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중단할 계획이다.
세계은행의 연간 대중국 대출 규모는 2017년 24억달러(약 3조2000억원)에서 2025년 7억5000만달러(약 9990억원)로 감소했다.
중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세계은행의 개발금융 지원 대상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장기적으로는 국민소득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2035년까지 1인당 GDP를 '중간 수준 선진국'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를 1인당 2만달러(약 2664만원)를 웃도는 수준으로 설명해 왔다.
동시에 중국은 서방과 다른 경제발전 모델을 제시하면서 기존 서방 주도 금융·원조 기구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제도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경제적 선진화와 개발도상국의 정치적 대표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이다.
◇ 상하이는 선진국 수준…저소득층은 월 16만원 미만
중국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배경에는 국내 소득격차라는 현실적 문제도 존재한다.
중국의 주요 대도시와 저소득 지역 사이에는 상당한 생활 수준 차이가 남아 있아사다.
상하이와 선전 등 연해 지역 대도시들은 여러 경제적 기준에서 이미 아시아의 부유한 도시들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중국의 소득 하위 20% 인구는 지난해 월 약 120달러(약 16만원)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생활했다.
셸레컨스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상당한 소득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가 전체를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분류하는 것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의 고소득국 기준을 충족한다고 해서 중국 국민 전체의 생활 수준이 서방 선진국과 같아지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미국의 1인당 GNI는 8만8810달러(약 1억1830만원)로 중국의 약 6.2배에 달했다.
WSJ는 중국이 경제적 소득 수준에서는 고소득국 진입을 앞두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고소득국으로의 통계상 진입이 중국의 외교적 지위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