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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콜럼부스의 날... 이상한 연방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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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오늘은 컬럼버스의 날이다. 미국은 해다마 10월의 둘째 주 월요일을 컬럼버스의 날로 기리고 있다. 연방정부 공휴일이다.
역사의 지형도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재편된다. 과거에는 영웅의 반열에 오르며 대대적인 찬양을 받던 인물들이 시대의 거울 앞에서 심판대에 오르는 일은 현대 사회에서 드물지 않다. 매년 10월 두 번째 월요일로 지정된 미국의 연방 공휴일 '콜럼버스의 날(Columbus Day)' 역시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균열의 최전선에 서 있는 기념일 중 하나다.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업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의 문을 열었다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는 오랫동안 '신대륙 발견'이라는 찬란한 수식어로 미화되어 왔다. 오늘날 이 날은 그 찬란함 이면에 가려진 피비린내 나는 침략의 역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거센 반발과 성찰의 대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재평가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년 가을마다 대중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해묵은 의문이 하나 있다. 바로 "콜럼버스의 날이 버젓이 연방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 등 월스트리트의 주식시장은 굳건히 문을 열고 정상 영업을 하는가" 하는 점이다. 국가 공휴일에는 모든 경제 활동이 멈추어 서야 할 것 같지만, 자본주의의 심장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벨을 울린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풍경 속에는 미국의 복잡한 연방제적 속성, 금융시장의 오래된 관행, 그리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경제적 실리 사이의 미묘한 척도가 얽혀 있다.

콜럼버스의 날이 지닌 역사적 연혁을 먼저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1492년 10월 12일,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바하마 제도의 섬에 도달했다. 이를 기념하는 움직임은 식민지 시대 이후 미국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서서히 무르익었다. 공식적으로 콜럼버스의 항해 300주년이 되는 1792년 뉴욕에서 기념 행사가 열렸고, 이후 19세기 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사회적 차별과 멸시에 맞서 자신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미국 역사에 기여한 바를 증명하려는 상징적 매개체로 이 날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마침내 1937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날을 공식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콜럼버스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진취적인 정신과 유럽계 이민자들의 성공적인 아메리카 정착을 상징하는 영웅이었다. 초기에는 매년 10월 12일로 고정되어 있었으나, 1971년 공휴일 통일법(Uniform Monday Holiday Act)이 시행되면서 직장인들의 연휴 보장을 위해 현재와 같이 10월 두 번째 월요일로 변경되었다.

역사의 바퀴가 굴러가며 영웅의 얼굴은 가면을 벗듯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부터 인류학자, 역사학자, 그리고 원주민 인권 단체들을 중심으로 콜럼버스의 항해를 '발견'이 아닌 '침략과 학살의 서막'으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콜럼버스가 도달한 카리브해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 타이노(Taino)족을 비롯한 수많은 원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비극은 오늘날 지워낼 수 없는 상처로 기록되어 있다. 유럽인들이 옮겨온 전염병으로 인해 원주민 인구는 급감했고, 강제 노역과 가혹한 착취, 그리고 정복 과정에서의 무차별적인 학살은 문명의 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파괴였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이 공론화되면서 미국 전역에서는 콜럼버스의 날을 거부하는 거대한 흐름이 일어났다.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피닉스 등 수많은 대도시와 여러 주 정부들은 콜럼버스 데이를 폐지하거나, 이를 대체하여 원주민들의 고난과 역사적 공헌을 기리는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을 공식 지정하기 시작했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는 여전히 '콜럼버스 데이'라는 명칭과 공휴일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매년 대통령 포고문을 통해 원주민의 아픔과 유산을 함께 언급하며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콜럼버스라는 인물을 둘러싼 사회적 반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역사적 단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증시가 이 날 정상 영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주식시장이 열리는 것을 보고 "자본주의가 역사적 반감이나 정치적 논란을 무시하고 돈만 좇는다"고 비판하거나, 혹은 반대로 "콜럼버스에 대한 역사적 논란 때문에 괘씸죄로 문을 안 닫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진실은 정치적 찬반이나 역사적 평가와는 완전히 별개의 차원에 존재한다.
첫째로, 주식시장의 개폐장 여부는 연방 공휴일이라는 명칭 그 자체에 구속되지 않는다. 미국의 주식시장(NYSE, 나스닥)은 민간 자율 규제에 기반을 둔 증권거래소의 자체 캘린더를 따른다. 증시가 문을 닫는 날은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신년, 독립기념일, 노동절(Labor Day) 등 국가 전체의 상업적·경제적 활동이 철저하게 정지되는 소수의 핵심 명절로 엄격하게 한정되어 있다. 콜럼버스 데이나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 같은 날들은 연방 공휴일이기는 하나, 민간 기업과 일반 은행 본점들이 통상적으로 정상 근무를 하는 날에 가깝다. 증권거래소는 애초부터 이 날을 휴장일로 지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둘째로, 금융시장 내부의 기능적 엇갈림을 살펴보면 이 현상의 본질이 더욱 명확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콜럼버스 데이에 주식시장은 문을 열지만, 미 국채와 회사채를 거래하는 채권시장(Bond Market)은 SIFMA(미국증권업금융시장협회)의 규정에 따라 휴장한다. 또한 연방준비제도(Fed) 산하의 연준 은행들과 상당수 상업은행들도 문을 닫는다. 주식시장은 정상이지만 채권시장과 은행 결제망은 쉬는 기묘한 조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는 주식 거래 자체는 가능하지만, 주식 매매 대금의 최종 결제(Settlement)나 은행 간 송금 등 백오피스(Back-office) 업무에 일부 제약이 생김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 매매 세션 자체를 강제로 닫을 만큼 이 날이 금융시장에 필수적인 휴지기(休止期)로 기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증권가의 오랜 실무적 판단이다.

결국 콜럼버스의 날에 뉴욕증시가 열리는 현상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현대적 단죄나 반감의 발로가 아니다. 그것은 거대 자본이 작동하는 금융 시스템의 냉정한 관행과, 연방 공휴일의 법적 지위가 민간 자본시장의 영업 캘린더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제도적 분업의 결과물이다.

역사의 과오를 청산하고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는 일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치러야 할 마땅한 도덕적 숙제다. 콜럼버스의 날이 원주민의 날과 공존하며 과거의 영웅주의를 해체해 나가는 과정은 미국 사회가 더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진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거대한 이념과 역사적 논란의 풍랑 속에서도, 월스트리트의 주식 거래소는 자본의 시계를 멈추지 않은 채 묵묵히 숫자를 깜빡이며 돌아간다. 역사의 도덕적 심판대와 자본주의의 실무적 시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음을, 이 가을의 모순적인 풍경은 우리에게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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