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日은 투자사업 잇달아 발표…반도체·이란전 등 한미 현안과 맞물려"
이미지 확대보기한국이 미국과 3500억달러(약 470조435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한 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투자처와 첫 송금 시점이 아직 확정되지 않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 상업성이 확보된 사업에만 투자한다는 입장인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일본이 잇달아 대미 투자사업을 발표하는 것과 비교하며 한국에 속도를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대미 투자 문제가 반도체 생산, 이란전 지원, 한미연합훈련 등 다른 동맹 현안과도 얽히면서 한미 간 갈등 요인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FT는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과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한 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아직 투자자금이 확정적으로 배정되지 않았다며 이같이 전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미국 텍사스주 가스화력발전 사업과 원전 등이 투자 후보로 거론됐지만 청와대는 이번 주 구체적인 투자처와 발표 시기, 첫 송금 규모와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FT가 인용한 미국 측의 한 소식통은 한국이 속도를 내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반발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한국의 투자 지연에 대한 불만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이란과의 전쟁에서 한국이 미국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고 전했다.
미국 컨설팅업체 아시아그룹의 제니퍼 리 파트너는 “일본이 연속해서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것과 비교해 한국의 진척이 느려 보이면서 미 정부 내부의 불만이 상당히 커졌다”고 주장했다.
◇ 韓 연 200억달러 상한…日은 제한 없이 속도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당초 예고된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총 3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 가운데 1500억달러(약 201조6150억원)는 조선업, 2000억달러(약 268조8200억원)는 전략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연간 투자액에는 200억달러(약 26조8820억원)의 상한을 뒀다.
일본은 비슷한 협상을 통해 5500억달러(약 739조2550억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지만 연간 투자 한도는 없다.
일본은 이미 오하이오주 330억달러(약 44조3553억원) 규모 가스화력발전소와 테네시·앨라배마주에서 최대 400억달러(약 53조7640억원) 규모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 등을 발표하며 한국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3500억달러 투자를 과거 ‘선불’로 지급되는 돈이라고 표현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고문도 일본의 투자 약속을 사실상 ‘백지수표’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내에 합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투자는 상업적으로 타당한 사업에 한해서만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기업들이 사업성이 없는 프로젝트에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은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빠른 진전을 원하고 있어 양측의 입장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 “한미 합의 해석에 실제 간극”
FT는 양국이 대미 투자 합의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도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제니퍼 리 파트너는 “미국은 개별 사업에서 더 큰 규모의 투자를 원하고 투자처 선정에도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며 “양국 정부의 합의 해석에 실질적인 간극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경계심도 커졌다.
지난해 9월 미국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을 단속한 뒤 이 대통령은 이 사건이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 상당한 주저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미국에서 추가 생산하도록 투자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큰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미국 측 요구는 서울에 민감한 사안이라고 FT는 전했다.
반면 조선업에서는 한국의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세계 상선 건조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조선국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조선업 재건 구상도 한국의 기술과 전문인력을 미국 조선소에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과의 거래 중심 외교가 성과를 냈다고 내세울 수 있는 대규모 투자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11월 중간선거 앞두고 투자 압박 커질 가능성
한국이 첫 투자사업 발표를 미뤄온 것이 오히려 협상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로이 스탠가론 한미경제연구소 방문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첫 투자사업을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계속 지연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약속에서 빠져나가려 한다고 인식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도 압박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국 내 투자가 실제로 이뤄져야 이를 선거운동의 성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대미 투자 갈등이 이미 한미관계의 다른 현안들과 뒤섞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한미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을지프리덤실드)’의 규모를 줄이라고 지시했다. 다음날에는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란을 상대로 한 미국의 군사작전을 돕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다만 이번 주 별도로 시작된 한미일 3국의 5일간 군사훈련은 규모나 기간 변경 없이 진행됐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이란전 수행을 지원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란 외교부는 7일 한국이 걸프지역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작전에 참여할 경우 ‘심각한 결과’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탠가론은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병력을 파견하더라도 대미 투자 문제에서 양보를 얻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더 압박할 경우 미국이 지난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지원하기로 한 입장을 뒤집거나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하는 방안까지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한미동맹의 기본 토대는 강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바라보는 방식 때문에 재임 기간 양국 관계가 계속 불안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