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규정 계속 좇아 美상품 진입 제한…후속 무역협상 걸림돌”
농축산물 시장 개방 놓고 이견…英은 EU와 경제관계 강화
농축산물 시장 개방 놓고 이견…英은 EU와 경제관계 강화
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최고위 통상 당국자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고도 브렉시트로 확보한 규제 자율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이 미국 기준에 맞춰 생산된 상품과 농산물에 시장을 더 개방하기보다 EU 규정을 계속 따르면서 미국과의 추가 무역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영국이 브렉시트로 확보한 규제 자율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리어 대표는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EU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실제로는 이를 활용해 시장을 자유화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영국 측과의 협상에서 미국 기준으로 만들어진 상품과 농산물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지만 영국이 EU의 입장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리어 대표는 이러한 상황이 미국 입장에서는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 “EU 떠났는데 왜 美 기준 안 받나”
FT에 따르면 미국이 특히 불만을 나타내는 분야는 농업과 식품이다.
미국과 EU는 식품 안전과 농축산물 생산 규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염소계 소독제로 세척한 닭고기와 성장호르몬을 사용해 생산한 쇠고기 등 미국에서는 판매가 가능한 일부 식품이 영국과 EU에서는 제한된다.
그리어 대표는 영국이 브렉시트로 독자적인 규제를 만들 수 있게 된 만큼 미국 기준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더 개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과 초기 무역합의에 도달한 직후 EU와 농식품 규제를 다시 긴밀하게 맞추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영국과 EU가 추진하는 위생·검역 규정 정렬은 식품과 농산물의 국경검사를 크게 줄여 양측 교역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영국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 교역 상대인 EU와의 국경 마찰을 줄일 수 있지만 미국 기준으로 생산된 일부 농축산물이 영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FT는 영국이 미국보다 EU와 훨씬 많은 교역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 이러한 선택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 미국과의 무역 확대를 강조해왔지만 실제 경제적 이해관계에서는 EU와의 규제 정렬을 선택할 유인이 더 크다는 것이다.
◇ 美·英 첫 합의에는 만족…추가 협상은 정체
그리어 대표가 미·영 무역관계 전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양국이 체결한 초기 무역합의가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됐다며 현재까지의 결과에는 만족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은 당시 자동차와 농산물 등을 중심으로 일부 관세와 시장접근 문제를 조정했지만 광범위한 자유무역협정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이후 양국은 추가 시장개방을 놓고 협상을 이어왔지만 큰 진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리어 대표는 농업을 주요 미해결 과제로 꼽았다.
그는 미국이 영국과의 농산물 교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미국 농축산물에 대한 영국 시장 접근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도 미국 시장에서 자국 상품의 접근성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어 대표는 영국 측이 일부 제품을 ‘상징적인 영국 상품’으로 내세우며 미국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스카치위스키처럼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상품을 제외하면 영국이 주장하는 일부 제품의 상징성에는 의문을 나타냈다.
◇ 버넘 정부 EU 접근 강화…미·영 선택지 좁아지나
미국의 불만은 영국이 최근 EU와 다시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을 강화하는 가운데 나왔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생긴 EU와의 무역 장벽이 경제에 부담을 줬다는 입장을 나타내며 브뤼셀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식품과 농산물 분야에서는 EU 규정에 맞춰 국경검사와 행정절차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영국 기업의 대EU 교역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미국이 원하는 농산물 시장 개방과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어 대표의 발언은 결국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미국과 EU 사이에서 어느 쪽 규제체계에 더 가까이 설 것인지가 향후 미·영 무역협상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어 대표는 미국이 관세를 활용해 제조업을 되살리고 무역 불균형을 줄인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도 계속 유지할 것임을 강조했다.
FT는 영국이 브렉시트로 독자적인 통상정책을 펼칠 자유를 얻었지만 최대 교역 상대인 EU와의 경제관계를 강화할수록 미국이 요구하는 규제 완화와 시장개방을 수용하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딜레마에 놓였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