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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발 인플레이션, 미국에 집중된다

골드만삭스 “연말 근원 PCE 압박 50bp로 확대”…메모리·소프트웨어·전기료 3중 부담
지난 2013년 7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거래장에 골드만삭스 부스가 보인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3년 7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거래장에 골드만삭스 부스가 보인다. 사진=로이터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투자 붐이 전 세계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전기료 상승이 동시에 겹치면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큰 물가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골드만삭스의 최근 분석을 인용해 AI 확산이 미국의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선진국보다 클 것으로 전망된다고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골드만삭스의 메건 피터스 이코노미스트는 “AI가 미국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을 현재 연간 약 20bp(1bp=0.01%포인트)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근원 PCE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선호하는 물가 지표다.

골드만삭스는 이 압력이 연말에는 50bp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캐나다, 호주, 유럽, 영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의 근원 물가 상승 압력은 평균 10bp 안팎으로 예상됐다.

피터스 이코노미스트는 “AI발 물가 영향이 무시할 수준은 아니지만 미국 PCE에서 추정되는 50bp 정점에는 크게 못 미친다”며 “AI 인플레이션은 대부분 미국의 이야기”라고 진단했다.

◇ 메모리 가격 급등이 첫 충격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AI가 물가를 끌어올리는 첫 번째 경로는 메모리 반도체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면서 메모리 반도체와 주요 부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컴퓨터 하드웨어 정보업체 팡골리에 따르면 8GB DDR5 메모리 모듈 평균 가격은 최근 148달러(약 22만2000원)까지 올랐다. 1년 전 같은 기간 35달러(약 5만3000원)의 3배를 넘는 수준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서버와 PC, 주변기기 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소프트웨어·액세서리 물가 상승률이 올해 말 이전 정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오는 11월에는 전년 대비 30% 상승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미국 PCE 물가에서 소프트웨어와 액세서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다. 다른 선진국은 이 비중이 0.5% 미만이다. 같은 가격 상승이 나타나도 미국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 AI 붙인 소프트웨어도 가격 인상


두 번째 경로는 소프트웨어 가격이다.

기업들이 기존 소프트웨어에 AI 기능을 결합하면서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AI 코파일럿 기능을 통합한 뒤 365 묶음상품 가격을 올린 사례를 언급했다.

AI 기능은 생산성 향상을 내세우지만 소비자와 기업 입장에서는 구독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다른 주요 선진국보다 소프트웨어가 근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AI 기능이 추가된 소프트웨어 가격 인상분이 미국 물가에 더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다.

이 흐름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더 두드러질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업무 자동화와 문서 작성, 코딩, 고객관리 기능에 AI를 붙이고 있으며, 이를 고가 요금제나 추가 구독료로 연결하고 있다.

AI가 장기적으로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와 별개로 단기적으로는 소프트웨어 비용을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전기료 압박


세 번째 경로는 전기료다.

AI 모델을 훈련하고 운영하려면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 전력망 부담이 커지고 전기요금에도 압력이 생긴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 도시 지역의 평균 전기요금은 지난 5월 킬로와트시당 0.19달러(약 285원)로 집계됐다. 2022년 5월보다 약 27% 오른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데이터센터가 2030년 말까지 미국 전체 전력 수요의 약 11%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비중은 약 6%다. AI 인프라 확충이 계속되면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전력 가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에너지 가격에는 지정학적 요인도 겹쳤다. 이란 전쟁에 따른 공급 우려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최근 몇 달간 상승분을 상당 부분 반납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여전히 25%가량 오른 상태다.

전력과 에너지 비용이 함께 오르면 데이터센터 운영비뿐 아니라 일반 가계의 전기요금과 기업 비용에도 파급될 수 있다.

◇ 장기적으로는 물가 하락 효과도 가능


골드만삭스는 AI가 단기적으로는 물가를 밀어 올리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물가를 낮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봤다.

AI가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업무 비용을 줄이면 기업의 단위 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 이 경우 기술 확산이 시간이 지나며 물가 하락 압력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 시점은 불확실하다. 골드만삭스는 과거 보고서에서 AI가 장기적으로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1990년대 인터넷 붐 같은 과거 기술 사이클보다는 물가 하락 효과가 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시장에서는 당장의 비용 상승이 더 먼저 나타나고 있다. AI 서버에 필요한 메모리와 반도체는 공급 제약 속에 가격이 뛰고 있고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AI 기능을 앞세워 구독료를 올리고 있다. 데이터센터 확대는 전력망과 전기요금에 부담을 주고 있다.

AI 투자가 미국 경제의 새 성장축으로 부상했지만 그 비용도 소비자물가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의 분석은 AI 붐이 기술주와 생산성 논쟁을 넘어 중앙은행의 물가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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