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영란은행 총재, 커뮤니케이션 태스크포스 공동의장 맡아
점도표·포워드 가이던스 재검토…말 줄이는 연준 실험 본격화
점도표·포워드 가이던스 재검토…말 줄이는 연준 실험 본격화
이미지 확대보기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연준의 통화정책 소통 방식을 뜯어고치기 위해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를 외부 조력자로 끌어들였다.
시장에 금리 경로를 지나치게 설명해 온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워시 의장의 구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점도표와 기자회견, 포워드 가이던스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오랫동안 의존해 온 연준의 소통 도구가 재검토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워시 의장이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를 연준의 새 커뮤니케이션 태스크포스 공동의장으로 기용했다고 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킹 전 총재 측은 그가 태스크포스 공동의장을 맡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추가 논평은 하지 않았다.
◇ 외부 인사로 연준 관행 점검
이번 인사는 연준 내부 관행을 외부 시각으로 점검하겠다는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워시 의장은 이날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중앙은행 포럼 패널 토론에서 태스크포스에 참여할 외부 전문가 명단을 다음 주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은행 외부 인사와 미국 밖 전문가도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시 의장은 “일부 인사는 과거 중앙은행 고위직을 맡았던 사람들이고, 일부는 학계와 실무 영역에서 활동한 전문가들”이라며 “경제학계와 실무 현장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는 연준의 정책 소통을 내부 전문가들만의 논의에 맡기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연준의 말 한마디가 미국 국채금리, 주식시장, 달러, 주택담보대출 금리, 글로벌 자금 흐름을 흔드는 만큼 소통 방식 자체가 통화정책의 핵심 도구가 됐기 때문이다.
◇ 워시의 ‘말 줄이는 연준’ 실험
워시 의장은 취임 전부터 연준이 너무 많이 말한다고 비판해 왔다.
그는 시장이 연준의 다음 발언을 맞히는 데 매달리기보다 물가와 고용, 성장률 같은 실제 경제지표를 보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봐왔다. 중앙은행이 향후 금리 방향을 지나치게 안내하면 시장이 데이터보다 연준의 반응 함수를 읽는 데 더 집중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워시 의장은 5월 연준에 도착하면서 ‘체제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모든 금리 결정 뒤 기자회견을 계속 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고, 과거에는 연준 인사들이 공개 연설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지난달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는 정책성명문을 줄이고, 자신은 분기별 금리 전망인 점도표에 전망치를 제출하지 않았다. 또 금리 전망을 강하게 예고하는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보여 왔다.
이번 커뮤니케이션 태스크포스는 이런 워시식 접근을 제도화하는 장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연준이 언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시장과 대화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다시 보겠다는 것이다.
◇ 5개 태스크포스 가동
워시 의장은 지난달 연준 운영 방식을 점검하기 위해 5개 태스크포스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분야는 커뮤니케이션, 대차대조표, 기존 경제 데이터 활용과 의존도, 생산성과 고용, 인플레이션 체계다. 각 태스크포스는 외부 전문가와 연준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며 연말까지 결론을 공유할 예정이다.
커뮤니케이션 태스크포스는 이 가운데 금융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그룹이다. 점도표, 기자회견, 의사록, 성명문, 포워드 가이던스 등 연준이 시장에 신호를 주는 거의 모든 방식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시 의장은 신트라 포럼에서 점도표가 적어도 당분간은 유지되겠지만, 이 문제도 태스크포스에서 다루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당장 점도표를 폐지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현행 방식이 계속 유지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신호다.
◇ 머빈 킹은 중앙은행 소통 전문가
머빈 킹 전 총재는 중앙은행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상징성이 큰 인물이다.
킹 전 총재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영란은행 총재를 지냈고,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 중앙은행을 이끌었다. 그 전에도 영란은행 고위직으로 일하며 통화정책 보고서와 물가 전망을 중심으로 한 영국 중앙은행의 소통 방식을 정착시키는 데 깊이 관여했다.
1997년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 영란은행에 기준금리 결정 독립성을 부여한 뒤, 킹은 분기별 인플레이션 보고서를 투자자와 시장에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주요 수단으로 발전시켰다. 이 보고서는 현재 통화정책 보고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킹 전 총재는 중앙은행이 말로 시장 기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2005년 연설에서 이른바 ‘마라도나 금리 이론’을 언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앙은행이 실제 금리를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시장이 중앙은행의 의도를 믿으면 정책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취지였다.
워시 의장이 말을 줄이려는 연준 실험에 킹을 기용한 것은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킹은 중앙은행 소통의 중요성을 잘 아는 인물인 동시에, 소통이 시장 기대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깊이 이해하는 인물이다.
◇ 포워드 가이던스 재검토
핵심 쟁점은 포워드 가이던스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신호를 미리 주는 정책 도구다. 금융위기 이후 주요 중앙은행들은 시장 기대를 안정시키기 위해 포워드 가이던스를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워시 의장은 이 방식이 오히려 시장을 연준 의존적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투자자들이 경제지표 자체보다 연준이 그 지표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하는 데 몰두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최근 더 민감해졌다. 전임 제롬 파월 의장 시절 연준은 2021년 물가 급등을 일시적이라고 판단했다가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바꿨다.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당시 연준의 과도한 설명이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안정감을 줬다고 비판해 왔다.
워시는 이런 전례를 의식해 연준이 미래 경로를 덜 말하고, 데이터가 말하게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다만 소통을 줄이면 시장 변동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정보가 줄어들수록 투자자들은 짧은 발언과 단어 선택, 표정, 태스크포스 구성까지 더 집요하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점도표 운명도 변수
점도표는 연준 소통 개편의 또 다른 쟁점이다.
점도표는 연준 위원들이 예상하는 향후 기준금리 수준을 점으로 표시한 자료다. 시장은 이를 통해 연준 내부의 금리 전망 분포를 읽어왔다. 그러나 점도표는 공식 약속이 아닌데도 시장이 과도하게 정책 신호로 받아들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워시 의장은 지난달 본인의 금리 전망을 점도표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는 현행 점도표 방식에 거리를 두는 상징적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점도표를 당장 없앨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태스크포스가 점도표의 형식, 공개 방식, 해석상의 문제를 다룰 가능성은 커졌다. 점도표가 유지되더라도 시장에 주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 정치 압박 속 독립성 시험대
워시 의장의 소통 개편은 정치적 배경과도 맞물려 있다.
워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하던 시기에 의장으로 지명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부양과 차입 비용 절감을 위해 낮은 금리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워시는 취임 초기부터 물가 안정과 제도 개편을 강조했다. 그는 신트라 포럼에서도 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 선제 안내를 피하고, 다음 회의에서 위원들이 문을 닫고 토론한 뒤 결정할 문제라는 태도를 보였다. 로이터도 워시가 신트라 포럼에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거부하는 기조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이는 연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워시가 특정 금리 경로를 미리 약속하지 않고, 내부 토론과 경제지표 중심의 결정을 강조하면 정치권의 압박을 피해갈 여지가 커진다.
동시에 시장에는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워시의 발언보다 실제 경제지표와 태스크포스 결론, 연준 내부 논의 흐름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가능성이 있다.
◇ 연준의 언어가 바뀐다
워시 체제의 연준은 단순히 금리 수준만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중앙은행이 시장과 대화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 한다.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의 기용은 그 변화의 상징이다. 중앙은행 소통을 설계하고 금융위기 당시 시장과 대화했던 외부 인사를 데려와 연준의 오래된 관행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연준이 말을 줄이면 시장이 더 데이터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다. 반대로 공식 신호가 줄어들면서 작은 발언과 비공식 단서에 더 크게 출렁일 수도 있다. 워시의 실험이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