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자율함정·전장 AI에 VC 자금 집중…안두릴 몸값 93조원, 과열 우려도 확산
이미지 확대보기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발 걸프 지역 분쟁이 드론과 자율함정, 전장 인공지능(AI)을 올해 벤처캐피털 시장의 핵심 투자처로 끌어올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상장기업 투자와 벤처캐피털 시장 데이터를 제공하는 조사업체 피치북의 최근 자료를 인용해 올해 들어 방산기술 스타트업들이 벤처캐피털 자금 123억달러(약 18조9000억원)를 조달했다고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난해 전체 조달액 99억5000만달러(약 15조3000억원)도 이미 넘어선 규모다. 전쟁이 차세대 무기 수요를 드러내면서 싸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방산기술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FT는 투자 열기가 빠르게 달아오르면서 일부 분야의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높아졌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국방비 확대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자 일부 펀드들은 더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방산기술 기업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전쟁 양상 바꾼 드론·AI에 자금 집중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분야는 드론, 자율무인체계, 전장 AI, 감시·정찰 기술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저가 드론과 AI 기반 감시·타격 체계가 기존 고가 무기체계와 다른 방식으로 전장 판도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다.
걸프 지역 분쟁은 해양 방산기술에 대한 관심도 끌어올렸다. 영국 스타트업 크라켄 테크놀로지는 자율 기뢰탐색 선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의 무인 선박은 영국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 배치용으로 선정했다.
FT에 따르면 크라켄은 약 1억달러(약 1533억원) 규모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는 약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로 평가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라켄은 투자은행 PJT파트너스와 함께 자금 조달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JP모건의 유럽·중동·아시아 안보·회복력 이니셔티브 책임자인 대니얼 러드니키 슐룸베르거는 전쟁 수행 방식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방산기술을 장기 수요가 있는 분야로 보기 시작하면서 기업가치가 급격히 올랐다고 설명했다.
◇ 미국 스타트업이 투자금 대부분 흡수
방산기술 투자 붐은 미국에 크게 집중돼 있다. 올해 방산기술 스타트업이 조달한 123억달러 가운데 미국 스타트업이 114억달러(약 17조5000억원)를 가져갔다. 이 가운데 실리콘밸리 방산기술 기업 안두릴 인더스트리즈가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드론과 감시탑 기술로 알려진 안두릴은 지난달 50억달러(약 7조7000억원)를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는 610억달러(약 93조5000억원)로 평가돼 거의 두 배로 뛰었다. 투자자로는 스라이브 캐피털과 안드레센 호로위츠 등이 참여했다.
미국에서는 자율수상정 전문기업 사로닉 테크놀로지스와 항공 드론 업체 실드 AI도 자금을 유치했다. 전통 방산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들이 미래 전장 기술을 앞세워 빠르게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들 기업이 기존 방산업체보다 빠른 개발 속도와 낮은 생산 비용을 앞세워 국방 조달 시장을 흔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각국 군이 전쟁 장기화와 안보 위협 확대에 대응해 첨단 기술 기반 무기체계를 더 많이 요구하는 점도 투자 확대의 배경이다.
◇ 유럽도 방산기술 투자 확대
유럽 방산기술 스타트업들도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피치북 자료에 따르면 올해 유럽 방산기술 스타트업의 조달액은 4억6000만달러(약 7050억원)다. 다만 이 수치에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대형 자금 조달 건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독일 드론 스타트업 헬싱은 지난 5월 약 12억달러(약 1조8000억원)를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약 180억달러(약 27조6000억원)로 평가됐다. 헬싱은 스포티파이 창업자인 다니엘 에크의 지원을 받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독일 기업 스타크도 최소 3억유로(약 5270억원)를 조달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다. 스타크는 이른바 자폭 드론을 만드는 기업으로 기업가치는 약 25억유로(약 4조4000억원)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투자회사 AVP는 벤처캐피털 업체 얼리버드와 함께 5억유로(약 8790억원) 규모의 유럽 방산기술 펀드를 최근 출범시켰다. AVP의 브누아 포스프레즈 제너럴파트너는 유럽 군대의 장기 예산에 해당하는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며 방산기술 시장이 뜨겁다고 말했다.
◇ 위성·우주기술까지 투자 열기 확산
피치북 집계에는 우주기술 기업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포함하면 방산·안보 관련 기술 투자 열기는 더 커진다.
핀란드·폴란드 위성업체 아이스아이는 이달 10억유로(약 1조8000억원)를 조달했다.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100억유로(약 17조6000억원)로 평가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자금 조달 당시보다 네 배 높은 수준이다.
우주기술은 감시·정찰, 통신, 표적 식별 등 현대전의 핵심 기반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위성 기업과 우주 데이터 기업들도 방산기술 투자 붐의 주변 수혜주로 분류된다.
유럽 투자자들은 특히 정보·감시·정찰 분야와 핵심 부품의 역내 생산 능력 부족을 문제로 보고 있다. 미국 기술과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 자체 방산기술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 밸류에이션 과열 논란도 커져
투자금이 빠르게 몰리면서 방산기술 시장이 과열 국면에 들어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벤처캐피털사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경우 일부 기업의 매출 지속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항공 드론 분야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기업가치가 빠르게 오른 대표적 영역으로 꼽힌다. 방산기술 펀드를 운용하는 DTCP의 토마스 프로이스 최고투자책임자는 “시장이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과열은 항공 드론 같은 일부 분야에 집중돼 있다”며 “자율 해양시스템과 위성 분야에는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방산기술 투자 붐을 단순한 거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어드벤트인터내셔널의 쇼넬 말라니 매니징파트너는 “일부 높은 기업가치에 대한 우려는 타당하지만 방산기술 수요를 떠받치는 근본 요인은 현재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어드벤트는 지난 3월 차세대 방산기술에 최대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말라니는 방산기술과 방위 역량이 필요한 근본 이유는 현실적이며 이는 과장이 아니라고 말했다.
프로젝트A벤처스의 플로리안 하이네만 창업파트너도 방산기술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터무니없는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그는 이들 기업 뒤에는 실제 사업과 상당한 주문이 있다고 설명했다.
◇ 유럽, 전장 넘어 공급망 확보로 이동
유럽 방산기술 투자 흐름은 전장 장비 확충에서 공급망 확보로 넓어지고 있다. 유럽 방산기술 전문 벤처캐피털사 익스페디션스의 미코와이 피를레이 공동창업자는 “유럽에 정보·감시 분야의 심각한 역량 공백이 있다”며 “여러 핵심 부품의 현지 제조업체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첫 번째 투자 물결이 유럽의 전장 무기고를 다시 채우는 데 있었다면 이제는 최전선 장비부터 센서, 전자전, 프런티어 AI 모델, 반도체까지 공급망을 확보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와 걸프 지역의 분쟁은 방산기술이 단순한 틈새 투자 분야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산업정책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빠르게 오른 기업가치와 전쟁 수요에 기대는 매출 구조는 투자자들이 계속 따져봐야 할 변수로 남아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