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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전투기’의 배신…미국, 그리펜 엔진 ‘수출 거부권’ 첫 행사 파문

스웨덴 사브 ‘JAS 39 그리펜’, 저렴한 독자 대안으로 각광받았으나 미국산 엔진에 발목
25년간 묵인하던 美, 콜롬비아 수출길 최초 차단…마크 카니의 캐나다·태국 등 직격탄
국산화율 절반 미만…美 국무부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통제 장벽에 전 세계 안보 비상
미국산 엔진 수출 규제라는 복병을 만난 스웨덴 사브사의 ‘JAS 39 그리펜’ 전투기. 그리펜은 가성비가 우수하고 강대국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무기 체계로 각광받았으나, 핵심 심장부인 엔진(미국 GE사 제조)을 비롯해 부품의 상당수를 미국에 의존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사진=사브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산 엔진 수출 규제라는 복병을 만난 스웨덴 사브사의 ‘JAS 39 그리펜’ 전투기. 그리펜은 가성비가 우수하고 강대국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무기 체계로 각광받았으나, 핵심 심장부인 엔진(미국 GE사 제조)을 비롯해 부품의 상당수를 미국에 의존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사진=사브

스웨덴이 미국의 공군력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안보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개발한 ‘JAS 39 그리펜(Gripen)’ 전투기가 결정적인 외교적 아킬레스건을 노출했다. 그리펜은 미국산 전투기의 복잡한 후속 군수지원 체계와 정치적 간섭을 피할 수 있는 최고의 ‘독자 노선 전투기’로 평가받아 왔으나, 정작 심장부인 엔진이 미국산이라는 한계 때문에 미국의 무기 수출 통제 규칙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음이 천하에 드러났다.

지난 25년간 단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던 미국의 ‘엔진 수출 거부권(비토)’이 최근 콜롬비아 수출 건에서 사상 최초로 실제 행사되면서, 캐나다, 태국, 우크라이나 등 그리펜 도입을 추진 중인 중견국들의 안보 전략에 대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캐나다의 脫미국 승부수, 다시 ‘미국산 자물쇠’에 걸렸다


가장 뼈아픈 역설은 캐나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지난 2023년 미국 록히드마틴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88대를 도입하기로 확정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시절 겪었던 무역 갈등과 주권 침해 우려로 대미 관계가 급랭하자, 오타와 정부는 F-35A 주문을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최근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는 F-35A 도입 규모를 약 30대로 대폭 축소하고, 나머지 60대를 스웨덴 사브의 최신형 ‘그리펜 E’로 대체하는 교차 편성 구상을 구체화했다.
캐나다 방산 전문가들은 F-35를 운용할 경우 미국의 소프트웨어 및 정비 생태계에 완전히 종속되어, 향후 정치적 분쟁 발생 시 영공 방위에 심각한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이에 사브 측은 몬트리올 데이터센터 구축, 1만 2000개 일자리 창출, 5년 내 조기 인도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캐나다의 주권 자립 의지를 자극했다.

그러나 대안으로 선택한 그리펜 E 역시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F414’ 엔진을 탑재한다. 결국 캐나다가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은 비상구(그리펜)에도 똑같은 미국산 자물쇠가 채워져 있으며, 그 열쇠 역시 워싱턴이 쥐고 있는 셈이다.

25년 만에 무너진 독립 전투기의 신화


그리펜은 냉전 말기 중립국 스웨덴이 외세의 도움 없이 독자 생존하기 위해 설계한 전투기다. 고속도로나 간이 활주로에서도 일반 병사들이 손쉽게 정비할 수 있도록 가격이 저렴하고 구조가 단순해, 강대국의 간섭을 꺼리는 중견국(Middle Powers)들의 실리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현재 스웨덴을 비롯해 체코,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운용 중이며 브라질은 현지 조립 생산을 진행 중이다. 태국 또한 기존 F-16을 대체하기 위해 그리펜 E/F 계약을 체결해 인도를 앞두고 있으며, 사브는 우크라이나 공급을 위한 생산 라인 확장까지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리펜의 실제 국산화율은 절반 미만이다. 엔진 외에도 하니웰,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 등 미국산 핵심 부품이 3분의 1을 차지하며, 영국과 프랑스산 부품도 혼재되어 있다. 이 중 가장 치명적인 제어권을 가진 것이 바로 미국 국무부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이다.

지난 1999년 남아공 수출을 시작으로 모든 수출 건에서 미국은 무난히 승인을 내주며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무언의 승인이 이어지자 그리펜은 완벽한 '독립 전투기'라는 명성을 얻었으나, 최근 미국이 콜롬비아로의 F414 엔진 수출을 거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전투기 엔진 중 그리펜에 바로 대체해 장착할 수 있는 기성품 엔진은 전 세계에 없다”며 “미국의 이번 첫 거부권 행사는 향후 그리펜의 글로벌 수주 전선은 물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독자 노선을 걷고자 했던 중견국들의 안보 전략에 강력한 차단 벽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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