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이 창립멤버인 '팍스 실리카'에 EU 합류 초읽기…협상력 변수
이미지 확대보기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 3일(현지시각) 브뤼셀에서 '반도체법 2.0(Chips Act 2.0)' 입법안을 공식 발표한 가운데, 슬로바키아 소재 싱크탱크인 중유럽아시아연구소(CEIAS)가 지난 17일(현지시각) 발표한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을 메모리 반도체 핵심 협력국으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EU가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 '팍스 실리카(Pax Silica)' 가입을 검토 중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2023년 1차 반도체법이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평가 속에 나온 이번 후속 입법은, 2035년까지 1200억유로(약 210조원) 투자 동원을 새 목표로 내걸었다.
EU, 공급에서 수요 중심으로 정책 틀 재설계
EU 집행위는 클라우드·인공지능(AI) 개발법(CADA), 오픈소스 전략과 함께 이번 법안을 기술주권 패키지로 묶어 내놨다.
1차 법은 430억유로(약 75조원) 투자로 2030년까지 세계 점유율 20% 달성을 목표로 했지만, 유럽회계감사원(ECA)이 특별보고서에서 "달성이 매우 어렵다"고 평가하면서 2.0 법안은 해당 수치 목표를 뺐다.
새 법안은 첨단 AI 반도체 파운드리에 300억유로(약 52조원) 안팎을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고, 인허가 절차를 최장 12개월로 단축하는 내용도 담았다.
CEIAS "한국, 메모리 핵심"… EU, 팍스 실리카 합류 저울질
CEIAS 보고서에서 슬로바키아공과대(STU) 마르틴 바이스 교수는 EU의 약점을 후공정에서 찾았다. 세계 상위 20대 패키징·테스트(OSAT) 기업 가운데 EU 국적사가 한 곳도 없고, 첨단 전공정 생산 능력도 아일랜드 인텔 공장 한 곳에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벨기에 안보외교전략센터(CSDS) 안토니오 칼카라 프로그램장은 한국이 메모리, 일본이 소재·장비, 대만이 첨단 파운드리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며, 유럽이 갖추기 어려운 역량을 인도태평양 협력국에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EU가 미국 국무부 주도로 지난해 12월 출범한 팍스 실리카 가입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인용했다. 한국은 일본·싱가포르·영국과 함께 팍스 실리카 창립 서명국이다.
유로뉴스는 이달 1일(현지시각) EU의 가입 추진 소식을 전하면서, 그리스·핀란드·스웨덴은 이미 개별 가입했다고 보도했다. 대만 민주주의·사회·신흥기술연구원(DSET) 샬럿 추 정책분석관은 EU의 가입을 관망자에서 참여자로의 전환 신호로 풀이하면서도, 회원국 간 거버넌스 이견이 변수라고 분석했다.
보조금에 '소유·지배' 조건 추가… K-반도체엔 변수
업계에서는 EU의 수요 중심 전환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기업에 새 협력 창구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EU의 '전략적 파트너십' 조항은 역내 생산이 부족한 메모리·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외국 기업과의 제휴 근거가 돼, 한국기업의 유럽 완성차·클라우드 공급망 진입 여지를 넓혔다는 평가다.
한국이 팍스 실리카 창립 서명국인 만큼, EU가 가입하면 같은 동맹 틀 안에서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보조금 조건에 더해진 '소유·지배 구조' 요건은 변수로 꼽힌다. 외국 기업도 역내 생산시설을 갖추면 '역내 사업자'로 인정받지만, 단순 수출 방식은 지원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기존 유럽 후공정·연구개발 거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완성형 팹 대신 후공정·전력반도체 소규모 협력에 주력한 슬로바키아·대만 모델처럼, 한국 장비·소재 기업도 틈새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U 반도체법 2.0은 유럽의회와 회원국 협의를 거쳐야 발효한다. 재원 마련을 위한 '유럽경쟁력기금' 신설 여부도 미정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과 정부가 EU의 팍스 실리카 가입 여부와 조달·인증 기준이 구체화하는 시점에 맞춰 협력 채널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