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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아끼는 연준’에 美 국채시장 변동성 커진다

포워드 가이던스·점도표 축소 추진…투명성 약화로 차입비용 상승 우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 사진=로이터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이 통화정책 방향을 미리 알려주는 기존 소통 방식을 줄이려 하면서 미국 국채시장 변동성과 차입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경고가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워시 의장이 연준의 포워드 가이던스와 점도표 활용을 축소하려 하면서 주요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시장 변동성 확대와 차입비용 상승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2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향후 금리 방향이나 통화정책 기조를 시장에 미리 안내하는 정책 소통 방식이다. 점도표는 연준 위원들이 예상하는 향후 기준금리 수준을 점으로 표시한 자료로 시장은 이를 연준의 금리 경로를 가늠하는 핵심 단서로 활용해왔다.

◇ 첫 회의부터 ‘덜 말하는 연준’ 예고

FT에 따르면 워시 의장은 지난 17일 연준 의장으로서 처음 주재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자신의 임기가 시장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연준이 금리 방향을 제시하는 데 사용해온 포워드 가이던스 일부를 없애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제로 연준은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발표한 성명에서 앞으로 몇 달 동안 완화나 긴축 중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시사하던 기존 문구를 삭제했다. 성명은 이전보다 짧아졌고 향후 정책 방향을 예고하는 표현도 줄었다.

워시 의장은 또 올해와 내년 금리 전망을 담은 자신의 점도표를 제출하지 않았다. 다른 연준 관계자 18명은 전망을 냈지만 정작 연준 의장의 전망이 빠지면서 점도표의 정책 안내 기능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워시 의장은 이번 변화가 금융시장이 소화해야 할 큰 변화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방향을 되돌릴 가능성은 낮게 시사했다. 그는 연준의 정책 소통 방식을 추가로 검토할 태스크포스를 만들겠다고 밝혔고 시장에서는 점도표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 투자자들 “투명성 약화가 위험 프리미엄 키워”


대형 채권 투자자들은 연준의 소통 축소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금리 방향에 대한 명확한 신호가 줄어들면 투자자들은 정책 불확실성을 보상받기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정부와 기업, 가계의 차입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JP모건자산운용의 밥 미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투명성이 줄어드는 데서 어떤 이익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투명성 감소는 더 많은 추측과 불확실성, 변동성, 위험 프리미엄, 이벤트 리스크를 뜻한다”고 말했다.

BNP파리바의 캘빈 체 전략·경제 책임자도 시장이 앞으로 더 쉽게 예상 밖 충격에 노출될 수 있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과 변동성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을 더 크게 반영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통화정책 방향을 덜 알려줄수록 국채시장이 FOMC 결정 전후로 더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기준금리 자체가 동결되더라도 성명 문구나 의장 기자회견, 점도표 변화가 이전보다 더 큰 가격 변동을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다.

◇ 2년물 금리 1년여 만에 최고


미국 국채금리는 이미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기준물인 10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전망을 반영해 0.5%포인트 올랐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이번 주 연준의 매파적 기조 영향으로 4.22%까지 상승했다. 이는 1년여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일부 투자자는 연준의 새 소통 방식이 자리 잡으면 금리가 더 오를 여지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회의 직후 며칠 동안 위험 프리미엄이 뚜렷하게 커지지는 않았다. 워시 의장이 만든 태스크포스가 구체적인 개편안을 아직 검토 중이어서 시장이 변화의 폭을 더 지켜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중 하나인 핌코의 티파니 와일딩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기자회견 축소, 덜 구체적인 소통, 채권시장을 놀라게 할 가능성 확대, 금리 변동성 상승 등 눈에 띄는 변화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점도표는 금융위기 이후 등장


포워드 가이던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 시대에 중요성이 커졌다. 단기금리가 사실상 더 내려가기 어려워지자 중앙은행들은 장기금리를 낮추고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을 유도하기 위해 향후 정책 방향을 시장에 설명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2012년 점도표를 도입했다. 당시 점도표는 연준이 금리를 장기간 제로 수준에 가깝게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장에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현재 금리가 금융위기 직후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라오면서 점도표의 효용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워시 의장은 과거부터 점도표와 포워드 가이던스가 연준을 기존 전망에 묶어두고 정책 오류를 되풀이하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해왔다.

워시 의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도 시장이 중앙은행의 안내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가격이 투자자들의 판단보다 연준의 견해를 더 많이 반영하는 일종의 울림방 구조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 변동성 확대가 연준에 도움 된다는 시각도


연준의 소통 축소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시장이 지나치게 안정되고 정책 경로를 확신하게 되면 위험 선호와 투기, 레버리지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캐피털그룹의 프라모드 아틀루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워시 의장의 변화가 시장 변동성과 차입비용을 높일 수 있지만, 이것이 연준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시장에 과도한 확실성이 생기면 변동성이 사라지고 위험 감수와 투기, 차입 확대가 장려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동성이 커지고 채권금리가 높아지면 기업과 개인의 차입이 더 비싸지고 금융 여건은 긴축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도 중앙은행과 시장 사이에는 어느 정도 힘의 비대칭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통화완화 국면에서는 중앙은행이 시장을 놀라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매크로 헤지펀드에는 새 기회


연준이 덜 말하는 시대는 일부 투자자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채권과 통화, 원자재 등 거시경제 변수에 베팅하는 매크로 헤지펀드들은 중앙은행 결정이 장기간 예고되지 않을수록 예측 능력으로 수익을 낼 여지가 커진다고 보고 있다.

코네티컷주 소재 헤지펀드 그레이엄캐피털의 켈리 트로핀 휘트리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시장을 덜 관리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구조적으로 더 높은 변동성을 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엄캐피털은 210억달러(약 32조2000억원)를 운용하는 매크로 중심 헤지펀드다. 휘트리지는 투자자들이 계속 단기금리 쪽을 거래해왔고 이것이 중요한 전략이었지만, 앞으로는 그 중요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워시 의장의 소통 방식 변화는 연준과 시장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는 시도가 될 전망이다. 시장은 더 이상 연준이 금리 경로를 상세히 안내해주는 환경에 익숙해질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미국 국채시장은 더 큰 변동성과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반영하는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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