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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럽 최대 국방비 강국 등극…프랑스 '전략 패권' 흔들린다

올해 국방비 183조 원…영국·프랑스 합산에 육박하는 '재무장 쓰나미'
F-35·애로우-3 미국산 싹쓸이에 FCAS·MGCS 공동사업까지 균열 가속
2023년 파리 에어쇼에서 공개된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차세대 전투기(NGF) 목업. 프랑스 다쏘항공과 독일 에어버스가 공동 개발 중인 이 사업은 주도권·기술 분담 갈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으며, 독일의 미국산 무기 대규모 도입이 사업 동력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2023년 파리 에어쇼에서 공개된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차세대 전투기(NGF) 목업. 프랑스 다쏘항공과 독일 에어버스가 공동 개발 중인 이 사업은 주도권·기술 분담 갈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으며, 독일의 미국산 무기 대규모 도입이 사업 동력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지돼온 유럽의 안보 권력 구도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경제 강국, 군사 약국'이라는 공식을 깨고 독일이 프랑스·영국을 동시에 제치며 유럽 최대 국방비 지출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단순한 국방비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재무장이 나폴레옹 전쟁부터 두 차례 세계대전에 이르는 '숙적의 역사'를 함께 안고 있는 프랑스의 전략적 정체성과 군사 주도권을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인도 유라시안타임스(EurAsian Times)에 기고한 국제안보 전문가 프라카시 난다(Prakash Nanda)는 독일의 재무장 가속화가 전후 유럽 안보 균형의 구조적 재편을 촉발하고 있다고 심층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독 간 균열이 깊어진 것이 오히려 독일 재무장의 속도를 높이는 역설적 동력이 됐다는 진단이다.

1270억 달러 vs 700억 달러…벌어지는 獨·佛 국방비 격차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Atlantic Council)에 따르면 독일의 올해 국방지출은 약 1270억 달러(약 183조 원)로 유럽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영국은 약 840억 달러(약 121조 원), 프랑스는 약 700억 달러(약 101조 원)로 독일에 크게 뒤진다.
이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전망이다. 영국은 2027년까지 GDP 대비 2.5%, 프랑스는 2028년까지 2.3%, 이탈리아는 2028년까지 2.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2029년 GDP 대비 3.5% 달성을 공언하고 있다. 애틀랜틱카운슬 추산으로 이 시점의 독일 연간 국방비는 약 1890억 달러(약 273조 원)에 달한다. 나토(NATO)가 지난해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2035년까지 GDP 대비 3.5% 목표를 독일은 6년 앞서 달성하는 셈이다.

이 천문학적 예산의 출발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독일이 조성한 1000억 유로(약 170조 원) 규모의 특별 국방기금이다. 일반 예산 규정 밖에서 설치된 이 기금을 바탕으로 2024년 독일 국방비는 이미 906억 유로(약 154조 원)로 유럽연합(EU)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총리는 여기서 나아가 독일을 "유럽 재래식 방어의 중추이자 유럽 최대·최강의 군대"로 만들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유럽 안보를 워싱턴도 베를린도 아닌 파리가 주도해야"


프랑스의 불쾌감은 독일의 국방비 증액 자체보다 그 구매 목록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은 수백억 달러 규모의 F-35 스텔스 전투기, CH-47 치누크 수송헬기, P-8 포세이돈 해상초계기, 애로우-3(Arrow-3) 탄도미사일 방어체계 등 미국산 무기를 대거 구매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안보를 워싱턴에도 베를린에도 아웃소싱해선 안 된다"고 직격했다.

파리의 핵심 우려는 전략 자율성의 침식이다. 독일이 미국산 무기를 대규모로 도입할수록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유로드론(Eurodrone), 주력지상전투체계(MGCS) 등 프랑스가 핵심 지분을 갖고 있는 유럽 공동 방산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더구나 프랑스는 EU 내 세 번째로 높은 부채 비율이라는 재정 제약으로 이른바 '체인소 플랜(Chainsaw Plan)'에 따라 공공지출 438억 유로(약 74조 원)를 삭감해야 하는 처지여서, 2030년 GDP 대비 2.6% 목표 달성조차 빠듯한 실정이다.

FCAS는 주도권 싸움, MGCS는 전략 비전 충돌


양국의 갈등은 구체적인 공동 무기개발 사업에서 이미 가시화됐다. FCAS는 프랑스 다쏘항공(Dassault Aviation), 독일·스페인 에어버스가 공동 개발하는 6세대 전투기 사업이다. 핵심 분쟁은 주도권이다. 다쏘는 차세대 전투기(NGF)가 FCAS의 '심장'이므로 프랑스가 전체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독일은 유로파이터와 F-35 등 기존 비(非) FCAS 시스템까지 통합하는 방향을 선호하며 독자적 전투 클라우드 체계 주도권을 요구한다. 유로드론 사업에서도 독일은 자국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쌍발 엔진 설계를 고집하는 반면, 프랑스는 전투 지역 운용에 적합한 경량 단발 설계를 원해 갈등을 빚고 있다.

MGCS 차세대 전차 사업의 충돌은 더 근본적이다. 프랑스는 아프리카·레반트 지역 등 해외 원정 작전을 상정한 경량 전차를 원하고, 독일은 러시아와의 대규모 정면 지상전을 상정한 중장갑 전차를 요구한다. 전략 비전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 균열의 파장은 프랑스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유럽외교협의회(ECFR) 마크 레너드(Mark Leonard) 소장은 "폴란드에도 독일 군사력에 대한 강한 역사적 공포 기억이 살아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외교협회(CFR) 리아나 픽스(Liana Fix) 연구원은 2026년 저서 『Germany Rearmed』에서 "독일의 급속한 재무장은 유럽 안보에 필요하지만 심각한 세력 불균형 위험을 동반한다"며 새로운 독일 패권의 출현을 막으려면 EU 차원의 긴밀한 통합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베를린 소재 방위연구기관 '유럽 신시대 방위'의 크리스티안 묄링(Christian Molling)은 "독일 국방비 증가의 파장은 다층적이며, 독일에 좋은 것이 이웃 국가에는 좋으면서도 나쁜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고 진단했다.
전략 전문가들의 중론은 독일 재무장이 국가 이익, 유럽 자율성, 동맹 책임을 결합한 균형 전략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데 모인다. 독일이 유럽 최대 경제국이자 대륙 중심부의 패권 국가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군사력 팽창이 주변국에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80년 넘게 유럽 대륙의 평화를 지탱해온 전후 질서 자체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경고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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