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주도 감산 체제 균열·유가 전쟁 도화선 될 수도
호르무즈 해협 개방 후 증산 현실화 땐 글로벌 에너지 판도 재편
호르무즈 해협 개방 후 증산 현실화 땐 글로벌 에너지 판도 재편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 에너지 위기가 60년 넘는 국제 석유 카르텔의 균열로 이어졌다.
로이터통신과 CNBC,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28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 탈퇴를 전격 선언하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해온 산유국 감산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보도했다.
수하일 무함마드 알마즈루이 UAE 에너지부 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결정은 생산 수준과 관련된 현재 및 미래 정책을 신중하게 검토한 끝에 내린 정책 결정"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어떤 나라와도 사전 협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탈퇴 시점은 오는 5월 1일이다.
왜 지금인가…이란 전쟁이 당긴 방아쇠
UAE의 OPEC 탈퇴는 수년간 쌓인 불만이 이번 이란 전쟁을 계기로 폭발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에너지 분석 기관 리스타드 에너지의 지정학 분석 수석 호르헤 레온은 이날 성명에서 "UAE는 사우디와 함께 유휴 생산 여력을 보유한 몇 안 되는 회원국으로, 이는 OPEC이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수단이었다"며 "단기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변수로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공급 조절 기능이 약화돼 유가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UAE는 올해 2월 기준 하루 약 340만 배럴을 생산하며 OPEC 내 사우디(약 1009만 배럴), 이라크에 이어 세 번째 산유국이다. 그러나 ADNOC(아부다비국립석유공사)의 실제 생산 능력은 하루 485만 배럴에 달해 OPEC 할당량(약 340만 배럴)이 걸림돌이 돼왔다.
능력과 할당량 사이 차이가 하루 145만 배럴에 이르는 셈이다. ADNOC은 상류 부문에만 지난 10년간 1500억 달러(약 221조 원)를 쏟아부으며 2027년까지 하루 500만 배럴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UAE 경제매체 에미리트247은 이 할당량 제약이 연간 기회 손실 약 200억~300억 달러(약 29조~44조 원)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탈퇴의 직접적 방아쇠를 당긴 것은 이란 전쟁이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이란은 UAE를 향해 탄도미사일 537발·순항미사일 26발·드론 2256발 등 총 2819발을 퍼부었다.
UAE 국방부는 이를 사드(THAAD)·패트리엇 등 방공망으로 대부분 요격했으나, 인명 피해 13명(사망)·부상 224명을 포함한 에너지 시설 타격이 이어졌다.
알마즈루이 장관은 탈퇴 발표 이후 CNBC에 출연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금 이 시점에 탈퇴하는 것이 OPEC 회원국과 유가에 최소한의 충격만 준다는 점에서 적절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삭소 은행(Saxo Bank) 원자재 전략 책임자 올레 한센은 걸프뉴스에 "UAE는 수년간 답답함을 줘온 생산 할당량이라는 족쇄를 이번 기회에 벗어 던졌다"며 "중단기적으로 시장은 UAE의 추가 물량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UAE 균열…OPEC의 '최후'가 시작됐나
UAE의 탈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넘어 걸프 지역의 새로운 권력 지형을 예고한다는 시각이 많다. 한때 맹방이었던 사우디와 UAE는 오일 정책, 지역 패권, 인재·자본 유치 경쟁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갈등을 거듭해왔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이 UAE 방어에 충분한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아부다비 측의 불만도 결정을 촉진했다고 WSJ은 보도했다.
아부다비의 안와르 가르가시 외교 아카데미 학장 에릭 알터는 WSJ에 "UAE의 OPEC 탈퇴는 동맹 구도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UAE의 더 넓은 결단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칼럼니스트 론 부소는 "UAE의 극적인 결정은 OPEC의 분수령이자 걸프 내 권력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이란 전쟁이 끝나 바닷길이 열리면 OPEC+, UAE, 미국 간 시장 점유율 쟁탈전이 펼쳐지며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수년간의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국무부 국제에너지 담당 특사를 지낸 데이비드 골드윈은 CNBC에 "사우디는 여전히 자체 여유 생산량으로 시장을 통제할 능력이 있지만 UAE가 이탈하면서 그 힘은 분명히 약해졌다"며 "이번 결정으로 유가 변동성이 크게 높아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OPEC은 창설 65년 만에 중대한 기로에 섰다. 1970년대 전 세계 생산의 50%를 장악했던 OPEC은 현재 약 30% 수준으로 존재감이 쪼그라들었고, 이번 UAE 탈퇴로 생산 능력 기준 약 13%를 추가로 잃게 됐다.
에너지 분석 전문 업체 클플러(Kpler)의 시니어 오일 애널리스트 호마윤 팔락샤히는 WSJ에 "이번은 OPEC이 맞은 역대 최대 타격"이라며 "OPEC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한국 에너지 수급에는 어떤 영향이 오나
UAE의 OPEC 탈퇴가 한국의 원유 수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한국은 UAE산 원유를 안정적으로 수입해온 주요 소비국이다.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UAE의 증산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시장의 원유 공급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여전한 만큼 단기 수급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신중론도 함께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물량의 각각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길목이다.
시장에서는 단기 유가 하락 요인과 중장기 변동성 확대 요인이 공존한다고 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4월 단기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브렌트유는 2026년 2분기 평균 배럴당 115달러(약 16만 9510원)로 고점을 찍은 뒤 점차 내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28일(현지시각) 브렌트유는 배럴당 111달러(약 16만 9510원) 선에,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99달러(약 14만 5926원) 선에서 거래됐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