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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통행료 30억 원…이란, 하루 4척만 통과 허용

혁명수비대, 휴전 뒤에도 해협 장악…위안화·암호화폐로만 수납
한국 수입 원유 90% 이 길목 통과…제조업 생산비 12% 상승 경보
호르무즈 해협.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 사진=연합뉴스
세계 에너지 수송의 대동맥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유료 통제 구역'으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지난 7일(현지시각) 2주간의 휴전에 합의했지만, 해협을 지나려는 선박들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사전 허가를 받고 암호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통행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조건을 마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각) 중재국 관계자와 해운 브로커 취재를 토대로 보도한 내용이다.

하루 4척 통과, 전쟁 전의 4%…"격파" 경고 라디오로 송출


이 해협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숫자로 먼저 말한다. 이란이 중재국 측에 제시한 하루 허용 통행 척수는 약 12척이다. 그런데 에스앤피(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 집계 기준으로 8일 실제 통과한 선박은 단 4척이었다. 4월 들어 가장 적은 수치다.

전쟁 전 하루 100척 이상이 자유롭게 오가던 것과 비교하면, 이란이 내건 '허용' 기준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 통신도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근 이란 라라크섬과 케슘섬 사이 북쪽 좁은 수로를 하루 10~16척이 통과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박 입장에서 해협은 이미 전쟁터나 다름없다. WSJ이 입수한 녹음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날 오전 해협 내 해양 초단파(VHF) 라디오를 통해 "혁명수비대 해군의 허가 없이 항행하는 선박은 격파 대상"이라는 경고를 페르시아만과 오만해 전역에 거듭 쏘아 보냈다. 배에 탄 선원이 직접 녹음해 WSJ에 제공한 내용이다.

통행료 체계는 빠르게 제도화되고 있다. 선박 규모에 따라 차등 부과되며, 원유 200만 배럴을 싣는 수퍼탱커 한 척에는 최대 200만 달러(약 29억~30억 원)가 책정된다.

이란 타스님 뉴스에 따르면, 이란이 연간 1000억 달러(약 148조 원) 이상의 통행료 수입을 거둘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란이 선박별 차별 대우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란의 '형제국'으로 분류된 이라크산 원유 유조선이 통과를 허가받았고, 중국·파키스탄 선박도 통행이 가능했다. 반면 미국·이스라엘 선박의 통행은 아예 막혔다.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2주간의 휴전 기간 해협 통행은 이란군의 감독 아래 이루어질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도 이 발언을 공유했다.

이란 의회는 통행료 부과와 이란의 통행 승인권을 명문화한 해협 관리 계획을 이미 통과시켰다고 이란 국영방송 IRNA가 전했다.

"핵·미사일만큼 중요한 카드"…트럼프도 '공동 사업' 검토 인정

이스라엘 국방정보국 이란 담당 전 국장 대니 치트리노비츠는 WSJ에 "이란에 호르무즈 통제권은 미사일이나 핵 프로그램만큼 중요한 전략 자산"이라며 "통제권 확보는 이란에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결정적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다. 그는 8일(현지시각) ABC방송 인터뷰에서 통행료 징수 관련 질문에 "호르무즈 해협을 '공동 사업'(joint venture) 형태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이 발언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통행료를 묵인하겠다는 것으로, 일종의 전쟁 배상금으로 간주하고 미국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이란의 통행료 징수를 "불법이고 위험하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해협에 가장 의존하는 유럽·아시아 국가들이 앞장서야 한다"며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사실상 거부했다.

스웨덴 에스이비(SEB) 은행 신흥시장 전략가 에릭 메이어슨은 WSJ에 "미국이 항공 전력에서 완벽한 우위를 누리면서도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완전히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극명한 대조"라고 꼬집었다.

법리 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처럼 인공 수로는 통행료가 허용되지만, 자연 해협에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상 통행료를 부과할 수 없다.

이란과 미국이 이 협약 비준국이 아니라는 점이 변수지만, 걸프만 산유국들은 국제 조약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일 국제안보연구소(SWP) 객원연구원 하미드레자 아지지는 최근 분석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통제권은 국제 시장에서 즉각 가시화되고, 지속적으로 행사 가능하며, 길고 복잡한 외교 협상에 덜 의존하는 새로운 방식의 영향력"이라고 진단했다.

원유 90% 이 길목 통과하는 한국…제조업 생산비 12% 상승 경보


호르무즈 문제는 한국에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수입 원유의 약 70%가 중동산이고, 이 가운데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에너지 분석기관 제로 카본 애널리틱스는 에너지 안보 취약도 평가에서 일본에 이어 한국을 아시아 2위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한국 전체 에너지의 81%가 수입 화석연료에 달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은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한국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11.8%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번 사태로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 2.1%에서 1.7%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하락폭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크다.

증권가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원유와 가스는 물론 석유 제품, 비료 가격이 단기간 급등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는 현재 17개국을 상대로 원유 대체 도입에 나서, 4월분 5000만 배럴·5월분 6000만 배럴을 확보했다고 산업통상부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는 평시 도입량 8000만 배럴의 각각 60%, 70% 수준이다.

오일 분석업체 스파르타의 원유 리서치 본부장 닐 크로스비는 WSJ에 "공식 체계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선박별 개별 협상 구조여서 원유시장 입장에서 사실상 제로(0)에 가까운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너지 데이터 전문기업 엔베루스는 국제 유가가 2026년 연평균 배럴당 95달러(약 14만690원), 2027년에는 100달러(약 14만8100원)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MST마퀴의 에너지 리서치 책임자 사울 카보닉은 로이터 통신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더 자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호르무즈 요금소' 사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 에너지 시장을 뒤흔든 것처럼, 단 하나의 병목 지점이 세계 경제 전체를 볼모로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2주간의 휴전이 끝나는 시점에 이란이 해협 통제권을 어떻게 행사할지가 향후 국제 에너지 질서의 향방을 가를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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