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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과 에너지 시장] 트럼프 "이란 군사력 전멸" 선언에...배럴당 119달러 유가, 하루 만에 86달러로 폭락

브렌트유·WTI, 장중 2022년 이후 최고점 찍은 뒤 20% 이상 급락… 단일 거래일 최대 낙폭
G7 재무장관 "사상 최대 전략비축유 방출 준비"… 공급 쇼크 공포 진화에 결정적 역할
나스닥 1.4%·S&P 500 0.8% 반등… "에너지 비용 감소, 인플레이션 압력 숨통 트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단 하나의 발언이 국제 에너지 시장을 통째로 뒤집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현지시각) CBSNBC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전쟁은 사실상 완료(complete)됐다"고 선언하는 순간, 배럴당 119달러(174500)를 돌파하며 치솟던 국제유가는 수직 낙하를 시작했다. 에너지 시장이 하루 안에 공포와 안도를 번갈아 체험한 이 사태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얼마나 순식간에 유가 방향성을 바꿀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제 유가 주요 변동 현황 (현지시간 9일 기준).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국제 유가 주요 변동 현황 (현지시간 9일 기준).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유가, 장중 119달러→86달러… 단일 거래일 '롤러코스터'


9일 파이낸셜타임스(FT), 배런스 등에 따르면, 이날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아시아 시장 개장 직후 배럴당 119달러를 웃돌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119.48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오후 인터뷰에서 "이란은 해군도, 통신 인프라도, 공군도 남아 있지 않으며 미사일 전력은 분산됐고 드론 생산 시설도 완전히 파괴됐다"고 밝히자 시장은 즉각 반전했다. 브렌트유는 89.63달러, WTI86.20달러까지 후퇴하며 당일 고점 대비 25% 안팎의 낙폭을 기록했다. 에너지 정보업체 S&P 글로벌 커머디티 인사이츠의 분석가들은 이 같은 단일 거래일 급등락을 "지정학 프리미엄의 순간적 팽창과 수축"으로 규정했다.

G7 비축유 카드·푸틴 중재… 공급 우려 동시다발 진화


유가 진정에는 외교·정책 양면의 충격 흡수 장치가 동시에 작동했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은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 비축유(SPR)를 방출할 태세가 갖춰져 있다"고 밝혔다. 2022년 러-우 전쟁 당시 국제에너지기구(IEA) 주도로 단행된 비축유 방출이 당시 유가 안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G7 공언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상당한 신뢰 신호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외교 채널도 가동됐다. 크렘린궁 발표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약 1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가지며 중동 분쟁 종식 방안을 논의했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정책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이 최근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지도자들과의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 종전 구상을 트럼프 측에 전달했으며, 통화 분위기는 매우 건설적이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점을 주목한다. 국내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축유 방출 준비와 러-미 외교 채널의 동시 가동은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공급 공백''전쟁 장기화' 두 가지 시나리오를 한꺼번에 차단한 셈"이라고 말했다.

전장은 여전히 긴박… NATO 미사일 격추·이스라엘 추가 공습


그러나 전선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이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공망은 터키 영공으로 진입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했다. 이번 분쟁 발생 이후 두 번째 사례다. 이스라엘 역시 이란 본토와 레바논 내 목표물을 향한 추가 공습을 지속하며 군사적 긴장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이란 내부 정치 변동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부상한 것을 두고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이며 큰 실수"라고 직격했다. 대통령은 "새로운 체제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의 권력 승계 구도가 불안정해질 경우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은 재차 증폭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긴장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공포 걷어낸 월가, 나스닥 1.4% 반등… "인플레이션 압력 숨통 트여


유가 급락은 물가 상승 압박에 시달리던 뉴욕 증시에 단비로 작용했다. S&P 500 지수는 장 초반 1.5% 가까이 밀렸으나 트럼프 발언 이후 상승 전환해 0.8% 오른 채 마감했고, 다우존스 지수도 한때 1.9% 하락하다 반전했다.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S&P·다우 모두 2025430일 이후 최대 장중 반전폭이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도 1.4% 상승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금융 분석가 피터 웰스는 FT"이란의 군사 역량이 무력화됐다는 대통령의 공언이 시장 불확실성의 핵심 고리를 끊어냈다"고 평가했다. 유가 하락으로 제조업체와 항공사 등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줄어들면 기업 수익성 개선과 소비심리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경로가 열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내 시장 전문가들도 이번 유가 급락이 한국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원유 수입 원가가 이 수준에서 안정된다면 2분기 마진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중동 정세가 언제든 급변할 수 있는 만큼 헤징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란 석유 수출 재개 가능성… 원유 공급 구도 또 다른 변곡점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란 석유 수출 재개 가능성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NBC 인터뷰에서 이란산 원유 도입 재개 여부에 관해 "분명히 사람들이 그 문제를 논의해 왔다"고 언급, 협상 여지를 내비쳤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기 전까지 하루 200만 배럴 이상을 수출하던 산유국이다. 제재 해제와 원유 수출 재개가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공급량이 확대돼 유가에는 추가적인 하방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반면 이란 핵 협상 재개 여부,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국들의 감산 정책 향방, 미국 셰일오일 업계의 증산 가능성 등이 서로 맞물려 있어 유가 전망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변수들이 산재한 가운데, 이번 사태가 던진 핵심 질문은 하나다. '트럼프 발언 하나로 움직이는 에너지 시장'이 지속 가능한 구조인가, 아니면 더 깊은 지정학적 재편의 서막인가. 그 답은 중동의 화약고가 다시 불씨를 키우느냐 아니면 완전히 식혀지느냐에 달려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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