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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 전쟁] "삼성전자·SK하이닉스 흔드나"…일본, 반도체에 10조 엔 '올인'

2040년 매출 40조 엔 목표·라피더스 2나노 직행…한국 파운드리·메모리 수익성 직격탄 경고
일본 정부가 반도체 시장 재진입을 선언하며 전례 없는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정부가 반도체 시장 재진입을 선언하며 전례 없는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일본 정부가 반도체 시장 재진입을 선언하며 전례 없는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문제는 그 칼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닛케이(NIKKEI)7(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40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관련 매출을 40조 엔(376조 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확정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의장을 맡은 성장전략회의는 오는 10'위기관리·성장투자' 공정표 초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10조 엔(94조 원) 이상의 공적 자금 투입을 핵심으로 하는 이 계획은, 단순한 자국 산업 보호를 넘어 미국·중국과 어깨를 겨루는 반도체 강국 복귀를 공식 선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데이터로 읽는 일본 반도체 전략 목표.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데이터로 읽는 일본 반도체 전략 목표. 도표=글로벌이코노믹


20205조 엔→204040조 엔…8배 성장 로드맵의 실체


일본 정부가 그린 성장 로드맵은 구체적이다. 2020년 기준 5조 엔(47조 원) 수준이었던 일본 내 반도체 관련 매출을 203015조 엔(141조 원), 204040조 엔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같은 기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2050조 엔(470조 원)에서 2035190조 엔(1788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일본은 그 성장 과실의 상당 부분을 자국 생산 물량으로 채우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축은 '피지컬 AI(Physical AI)' 전략이다. 인공지능(AI)이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장 등 물리적 기기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피지컬 AI' 영역에서 일본은 전통적 강점인 로봇 기술과 제조업 노하우를 반도체와 결합해 2040년까지 해당 분야 점유율 30%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분야에서 미국, 중국과 3강 구도를 형성하겠다는 의지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반도체 분야와 함께 차세대 조선, 그린 철강, 양자 컴퓨터 등 17개 전략 산업 분야를 선정해 부문별 상세 공정표를 수립 중이다. 해양 무인기(드론)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30% 확보라는 구체적 수치도 제시했다.

라피더스의 '기술 점프'…삼성 파운드리·SK하이닉스 HBM에 불똥 튀나


투자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지점은 일본 국책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Rapidus)의 행보다. 라피더스는 중간 공정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2나노 첨단 공정 양산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가 TSMC를 추격하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확대에 전력을 쏟는 상황에서, 일본이라는 강력한 변수가 추가로 등장한 것이다.
파운드리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이 '피지컬 AI' 전략 실행에 필수적이라고 명시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은 현재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이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자국 내 생산 기반을 갖출 경우, SK하이닉스의 HBM 지배력이 중장기적으로 도전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증권가의 한 반도체 전문 분석가는 "일본 정부가 산업경쟁력강화법 개정을 통해 데이터센터 유치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규제를 걷어내고, 공장 부지 취득 지원부터 공업용수·전력 공급 등 기반 시설 규제 완화까지 전방위 지원에 나서고 있다""인프라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구조가 정착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생산 원가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경쟁 여건에 놓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마모토에 자리 잡은 TSMC 공장과 홋카이도를 거점으로 성장 중인 라피더스 클러스터는 일본 반도체 생태계 부활의 현실적 기반이다. 두 클러스터가 완전 가동 체제를 갖출수록, 글로벌 공급망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누려 온 협상력은 점진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소부장 기업엔 '기회의 창'…그러나 장기전엔 독이 될 수도


한국 반도체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수출 확대의 문이 열릴 수 있다.

구마모토·홋카이도 클러스터 구축 과정에서 현지 공급망에 편입하려는 한국 기술 기업들의 움직임이 이미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HBM 관련 장비와 미세 공정용 소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은 일본 반도체 업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다만 장기 전망은 복잡하다. 일본이 소부장 생태계 강화에도 10조 엔 이상의 공적 자금을 집중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일본의 공격적인 보조금 정책은 한국 소부장 기업들에 단기적으로 수출 확대의 통로가 될 것"이라면서도 "일본이 소재·장비 자급률을 높이는 데 성공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일본 자국 기업과의 생존 경쟁이 불가피한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금, 일본의 반격은 단순한 경쟁 심화를 넘어선다. 정부가 인프라 비용을 직접 떠안고, 규제 장벽을 낮추며, 천문학적 보조금으로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일본식 산업 정책의 귀환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 구조에 실질적 압박을 가할 변수다. 특히 라피더스의 2나노 공정이 상용화 궤도에 오르는 2030년 전후가 한국 파운드리 산업의 첫 번째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반도체 굴기가 현실화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응 전략이 얼마나 선제적이고 정교하냐에 따라 향후 10년 반도체 패권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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