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원유 물동량 30% 통과, '에너지 대동맥' 마비… 선박 통행량 하루 최대 3척으로 급감
이란 혁명수비대, 드론·기뢰·고속정으로 무장한 비대칭전… '제2의 유조선 전쟁' 현실화 경고
글로벌 LNG 수입 4위 한국, 카타르·UAE발 연간 710만 톤 직격탄… 해상 보험료·용선료 천정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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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LNG 수입 4위 한국, 카타르·UAE발 연간 710만 톤 직격탄… 해상 보험료·용선료 천정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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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하루 통행량 '0~3척'… 1980년대 유조선 전쟁의 망령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현지시간) 해운 데이터 분석업체 마린트래픽(MarineTraffic)과 에너지 리서치 기관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의 공동 분석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이란의 대규모 보복 공격이 개시된 지난달 28일 이후 호르무즈 해협 일일 통행량은 3월 들어 0~3척 수준까지 추락했다. 평시 기준으로 하루 수십 척의 유조선이 오갔던 해협이 사실상 죽음의 수로로 전락한 셈이다.
이는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3분의 1, 액화천연가스(LNG)의 5분의 1이 단숨에 공급망에서 증발했음을 의미한다. 이라크-이란 전쟁이 한창이던 1984~1988년, 양국이 상대방 유조선을 공격한 '유조선 전쟁(Tanker War)'이 40년 만에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국제 원자재 시장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이란의 비대칭 전력… 드론·기뢰·고속정 '3중 봉쇄망'
이란이 구사하는 전술은 정규전과는 거리가 멀다.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한 저강도 게릴라 해전이다. FT가 인용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란의 해상 위협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무인 수상정(USV)이다. 전 미 해군 항공모함 타격전단 사령관 마크 몽고메리는 이란이 보유한 USV가 선박의 흘수선, 즉 물에 잠긴 선체 하부를 정밀 타격해 기관실 침수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선박을 격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요격이 까다로운 것이 최대 강점이다.
둘째, 기뢰다. 해군분석센터(CNA) 소속 해상 안보 전문가 조슈아 탈리스는 이란이 구소련제 접촉 기뢰부터 로켓 추진식 기뢰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기뢰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시드하르트 카우샬 박사는 "기뢰가 실제로 매설되지 않더라도 매설 소문만으로 국제 유가와 해상 보험료를 폭등시키기에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셋째, 항만 공격 미사일·고속정이다. 탈리스는 이란이 수천 기에 달하는 항만 공격용 미사일과 빠른 기동력을 갖춘 소형 고속정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좁은 해협 지형은 이 같은 소형 전력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트럼프 '유조선 호송' 카드… 전문가들 "공염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 해군이 상업용 유조선을 직접 호송하고, 저렴한 전쟁위험 보험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선제적 메시지였지만, 현장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탈리스는 "미 해군이 향후 7~10일 안에 상업 선박을 방어적으로 호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호송 작전은 이란의 대함 전력이 상당 부분 무력화된 이후에야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 미 제5함대 사령관 존 밀러는 법적 장벽도 거론했다. "미국 해군법상 미국 국적선이나 미국인 소유 선박이 아니면 호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걸프 해역에서 성조기를 달고 운항하는 상선은 손에 꼽힐 만큼 드물다.
기뢰 제거 역량도 역부족이다. 미국이 이 지역에 전진 배치한 연안전투함(LCS)은 불과 3척. 광대한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규모 기뢰 소탕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력이다. RBC 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수석 원자재 전략가는 트럼프의 호송 계획을 두고 "구상 단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아시아 직격탄… 한국, 글로벌 LNG 수입 4위의 '역설'
한국은 카타르·UAE로부터 연간 710만 톤의 LNG를 수입하는 세계 4위 시장이다. 이 물량의 절대다수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해협이 봉쇄된 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도시가스와 LNG 발전소의 연료 수급에 직접적인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물류비용 충격은 이미 시작됐다. 중동 원유를 실어나르는 수에즈맥스(Suezmax)급 유조선의 하루 용선료가 하루 새 두 배 이상 급등했다. 런던 보험 시장은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를 고위험 지역으로 추가 지정하며 전쟁위험 보험료를 가파르게 올렸다. 국내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조선·해운 관련 기업들은 추가 보험 부보 여부를 긴급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오일쇼크' 시나리오… 한국이 취약한 이유
한국은 에너지 생산 자급률(원자력 제외)이 6%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하위권 국가다. 원유와 LNG 모두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으며, 그 루트의 핵심 관문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1979년 2차 오일쇼크 당시 한국 경제가 입은 타격을 돌이켜보면, 해협 봉쇄의 장기화는 단순한 에너지 비용 상승을 넘어 인플레이션 재연·경상수지 악화·기업 수익성 저하라는 3중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전략비축유(SPR) 방출, 중동산 외 공급원 긴급 다변화(미국 LNG, 호주 LNG 등)가 가능한 완충재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가스공사는 3월 3일 긴급 에너지 수급 점검 회의를 통해 '비상수급 대응 프로토콜'을 가동 중이다. 그러나 비축 물량은 평균 50~60일치에 불과하다. 민간 비축유를 포함하면 약 90~100일 수준이나, 정부 통제 하의 즉각 방출분은 60일 내외다. 사태가 두 달을 넘어설 경우 국내 에너지 시장에 실질적 충격이 현실화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에너지 안보 전문가 클레이턴 사이글은 "갈등이 장기화할수록 미국과 이란 모두 에너지를 전략 무기로 더 거칠게 휘두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은 한국에게 냉혹한 경고로 들린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카타르·UAE산 LNG를 들여오는 이 나라가 지금 가장 위험한 바다 한복판을 마주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미래는 결국 미·이란 협상 테이블에 달려 있다. 군사적 충돌이 확전되지 않고 외교 채널이 열린다면 해협은 수주 안에 재가동될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이 봉쇄를 '협상 카드'로 끝까지 유지하거나 실질적 기뢰 매설로 에스컬레이션을 택한다면, 아시아 에너지 시장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유럽 에너지 위기를 능가하는 충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지금 당장 에너지 비상계획의 '실전 점검'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