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만 웃는 'AI 골드러시'…수익 증명 못 하면 한국 반도체로 불똥
빅4 올해 설비투자 6500억 달러 전망, 나토 4개국 국방비 합계 넘어서
빅4 올해 설비투자 6500억 달러 전망, 나토 4개국 국방비 합계 넘어서
이미지 확대보기왜 한국인가.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전 세계에 사실상 공급하는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GPU에 탑재되는 HBM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두 기업의 합산 비중은 90%를 웃돈다. 빅테크의 AI 투자가 늘면 한국이 먹고, 줄면 한국이 가장 먼저 굶는 구조다.
"나토 4개국 국방비보다 많다"…AI 인프라 전쟁의 민낯
블룸버그통신은 1일(현지시간) 칼럼니스트 토빈 하샤의 분석을 통해 알파벳(구글)·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빅4'의 올해 자본지출(CAPEX) 합산액이 6500억 달러(약 94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기준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나토(NATO) 주요 4개국의 국방비를 합친 규모를 웃도는 수치다. '인프라 전쟁'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시대가 됐다.
이 막대한 자금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구조적 기형이 드러난다. 빅테크의 지출 상당 부분이 GPU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로 집중되고 있어서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 시장의 86~90%를 장악한 데 이어, 지난 1월 말 마감된 2025 회계연도 4분기 기준 조정 매출총이익률 75.2%를 기록하며 AI 투자 사이클의 최대 수혜자 자리를 굳혔다.
수익 없는 투자…월가는 이미 이를 갈고 있다
반면 엔비디아의 칩을 대량 구매하는 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서비스 기업들의 상황은 다르다. 테크크런치는 지난 2월 말 보도에서 "빅테크 경영진은 AI 인프라를 미래의 핵심이라 주장하지만, 월가는 막대한 부채와 투자 대비 낮은 수익성에 이를 갈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AI가 기존 구독 모델을 잠식하며 오히려 매출이 떨어지는 이른바 'SaaS포칼립스(SaaS+apocalypse)'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초대형 계약은 계속 쏟아지고 있다. 오라클은 2025년 9월, 2027년부터 5년간 3000억 달러(약 434조 원) 규모의 컴퓨팅 파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는 이 발표 직후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독점적 클라우드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인프라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오라클·소프트뱅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1월에는 '스타게이트(Stargate)'로 불리는 5000억 달러(약 724조 원) 규모의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 1년여가 지난 현재, 스타게이트는 사실상 표류 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오픈AI·오라클·소프트뱅크 3사 간의 주도권 다툼과 자금 조달 문제로 공동 법인 설립 및 실질적인 건설 착수가 지연되고 있다. 실제 데이터센터 건설은 공동 프로젝트 대신 오라클-오픈AI 간 직계약 방식으로 우회 진행되는 양상이다. 엔비디아의 대규모 지분 투자 논의 역시 당초 거론되던 1000억 달러(약 144조 원) 규모에서 약 300억 달러(약 43조 원)로 대폭 축소되어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K하이닉스, '오더컷 폭탄' 맞을 수 있다
이 투자 광풍의 이면에서 가장 긴장하는 곳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빅테크 데이터센터 증설 수요에 맞춰 HBM 생산 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왔다. 대신증권은 2월 보고서에서 양사의 2026년 합산 메모리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인 약 37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장밋빛 전망은 전제조건이 있다. 빅테크가 AI 투자 대비 수익(ROI)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올 하반기 빅테크들이 수익성 개선에 실패해 투자 속도를 조절할 경우, 그 충격은 가장 먼저 부품 공급사인 한국으로 향한다. HBM 주문이 급감하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순식간에 수십조 원 단위로 증발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클라우드 중심에서 스마트폰·자동차 등 '온디바이스 AI'로 수요 축이 이동하는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온디바이스 AI 확대 시 범용 D램 가격이 HBM을 역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업계 내부에서 제기된다.
2026년 하반기 공급 과잉 vs. 2027년 상반기까지 쇼티지 지속
2026년 하반기 공급 과잉 우려를 두고 시장의 시각은 팽팽하게 엇갈린다. 비관론의 핵심은 HBM3E 세대의 재고 누적이다. 모건스탠리 등 일부 외국계 투자은행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3사의 공격적인 증설 물량이 올 하반기부터 시장에 쏟아지며 가격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주류 시장조사기관의 시각은 다르다. 트렌드포스와 IDC 등은 엔비디아 차세대 가속기 수요 급증으로 HBM4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는 시점은 2027년 상반기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HBM4 양산 수율 안정화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추론(Inference)용 서버 시장까지 빠르게 팽창하고 있어 당분간 쇼티지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대 교체기의 공급 공백이 오히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마진을 방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인구 절벽의 역설…한국·일본, AI 도입에 더 필사적
단기 위험 속에서도 전문가들은 동북아시아의 AI 수요 자체는 구조적으로 견고할 것으로 분석한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슈리 렌은 "과거에는 젊은 인구가 풍부한 인도·인도네시아가 투자 유망국이었지만,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한국과 일본은 생존을 위해 로봇과 AI 도입에 더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인구 절벽 앞에서 AI는 선택지가 아닌 생존 수단이라는 분석이다.
올해의 핵심 변수는 두 가지다. 빅테크가 AI 서비스에서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 그리고 2026년 하반기로 예정된 HBM4 본격 양산이 공급 과잉을 심화시키는가 아니면 해소하는가.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조나단 레빈은 "현재의 변동성은 AI 거품의 공기가 빠지는 신호일 수 있으며, 이는 오히려 장기 투자자에게는 옥석을 가릴 기회"라고 언급했다.
941조 원의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는지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결과는 엔비디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실적표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