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민 찐 총리, 14차 당대회 앞두고 권력 핵심부 이탈... 후임에 '금융 전문가' 레 민 훙 유력
이미지 확대보기BBC 뉴스 베트남어판이 26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친 총리는 2025년 8.02%라는 기록적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 명단에서 제외되며 5년 단임 임기를 끝내게 됐다. 이는 토 람(To Lam) 총서기 중심의 권력 재편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로, 향후 베트남의 경제 정책 기조가 '속도'보다 '안정'과 '제도 개혁'으로 이동할 것임을 의미한다.
8%대 성장률 달성한 '현장형 리더'... 고성장의 그늘은 과제로
팜 민 찐 총리는 2021년 취임 이후 코로나19 대유행 극복과 경제 회복을 진두지휘하며 강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의 칼 테이어(Carlyle Thayer) 명예교수는 지난 23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찐 총리는 임기 중 연평균 6% 이상의 성장을 유지했고, 특히 2025년에는 지역 내 최고 수준인 8.02%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며 "이는 서구권 어떤 국가의 수반도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찐 총리는 '3교대 4팀 가동' 같은 구호를 앞세워 남북 고속철도와 롱탄 국제공항 등 대규모 기반시설 사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따랐다. 찐 총리는 2025년 초 "생산과 사업 활성화를 위해 인플레이션의 일부를 희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2025년 하반기 들어 베트남 통화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물가가 상승하며 서민 경제의 부담이 커졌다.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의 윌리 타니오토 분석가는 2025년 신용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인 16%를 크게 웃도는 20%에 이르러 부동산 거품 등 잠재적 위험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토 람 총서기 체제의 권력 재편... '경제 사령탑'의 교체 배경
찐 총리의 퇴진은 베트남 공산당 내부의 권력 지형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베트남은 총서기(당), 국가주석(국가원수), 총리(행정), 국회의장(입법)이 권력을 나누는 '사기둥(Four Pillars)' 체제였으나, 토 람 총서기 집권 이후 당 중심의 권력 집중 현상이 뚜렷해졌다. 에드먼드 말레스키(Edmund Malesky) 듀크 대학교 교수는 "베트남 체제는 당이 노선을 정하면 총리가 이를 집행하는 구조"라며 "찐 총리가 유능한 관리자였음에도 토 람 총서기가 제시한 국가 운영 보고서의 위상에 가려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는 토 람 총서기가 자신이 설정한 새로운 성장 모델에 맞춰 정부 내각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찐 총리와 함께 7명의 부총리 중 상당수와 5명의 장관이 함께 교체될 예정이어서 베트남 행정부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맞이할 전망이다.
차기 총리 후보 레 민 훙... '기술 관료' 중심의 안정적 경영 예고
찐 총리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보로는 레 민 훙(Le Minh Hung)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이 거론된다. 올해 55세인 훙 위원장은 과거 베트남 국립은행(SBV) 총재를 지낸 금융·경제 전문가다. 칼 테이어 교수는 "훙 위원장은 국립은행 총재 시절 보여준 역량으로 대의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말레스키 교수는 "경제학에 정통한 인물이 핵심 리더십에 배치되는 것은 야심 찬 경제 계획을 가진 베트남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는 찐 총리 시대의 '정치적 의지'를 앞세운 강행군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정교하고 과학적인 '기술 관료(Technocrat)' 중심의 경제 운영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국 기업의 투자 패러다임 변화... ‘생산 기지’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베트남의 지도부 교체와 정책 변화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KOCHAM)와 업계는 2026년이 한국의 대베트남 투자가 ‘양적 확대’에서 ‘질적 발전’으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엔비디아,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은 베트남을 단순 조립 공장이 아닌 첨단 기술의 허브로 육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김년호 코참 회장은 지난 2일 보도된 인터뷰에서 "2026년 한국 기업의 투자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텍 등 하이테크 분야로 급격히 이동할 것"이라며 "베트남을 단순 생산 기지가 아닌 연구개발(R&D)과 기술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베트남 정부가 추진 중인 하이테크법 개정안은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존에 부여되던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토지 이용 특례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코참 측은 베트남 정부에 "부가가치세(VAT) 환급 지연 문제와 지역별로 상이한 행정 절차를 표준화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2026년 베트남은 제14차 당대회를 통해 토 람 총서기의 친정 체제를 공고히 하고, 레 민 훙 유력 후보를 필두로 한 '경제 드림팀'을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8%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면서도 인플레이션과 환율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차기 내각의 어깨는 무겁다. 팜 민 찐총리의 퇴진은 베트남 경제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안정'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기업들은 베트남의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단순 제조 비용 절감이 아닌 현지 공급망 고도화와 기술 리더십 확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