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2026년 반도체 대전환] AI는 ‘품귀’ vs 레거시는 ‘덤핑’ 우려… 극단적 양극화가 덮친다

‘1조 달러’ 기가 사이클의 두 얼굴…2026년을 가를 7대 이슈
선단 공정은 없어서 못 파는데, 범용 칩은 중국발 ‘물량 폭탄’ 경고등
시장 법칙 붕괴, 공급망 분단, 기술 임계점… 3중 파고에 갇힌 K-반도체
SK하이닉스가 2025년 3월 세계 최초로 공개한 12단 HBM4. 한국 반도체 산업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AI 메모리 리더십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다각화, DB하이텍·매그나칩의 전력 반도체 육성을 통해 2030년 글로벌 시장의 핵심 인프라를 장악한다는 구상이다. 사진=SK하이닉스이미지 확대보기
SK하이닉스가 2025년 3월 세계 최초로 공개한 12단 HBM4. 한국 반도체 산업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AI 메모리 리더십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다각화, DB하이텍·매그나칩의 전력 반도체 육성을 통해 2030년 글로벌 시장의 핵심 인프라를 장악한다는 구상이다. 사진=SK하이닉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바야흐로 매출 ‘1조 달러(1480조 원)’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2026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올해 대비 약 25~26% 성장해 9750억 달러(1443조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공식 전망했다. 이는 단순한 호황을 넘어 인공지능(AI)이 촉발한 산업의 구조적 대전환, 기가 사이클(Giga Cycle)’이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수치 이면에는 극단적 양극화고변동성이라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AI 칩과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없어서 못 파는 매진행렬을 이어가고 있지만, 레거시(구형) 공정과 범용 제품 시장은 중국발() ‘물량 밀어내기공세가 본격화될 수 있어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이에 2026년 반도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변수를 선정해 보았다.

2026년을 가를 핵심 변수 선정 기준


본지는 2026년 시장을 관통할 핵심 의제를 선정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 데이터와 기술 로드맵, 지정학적 변수를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핵심 이슈의 선정 기준은 명확하다.

첫째, ‘시장 문법의 파괴. 과거 D램 가격이 오르면 전 제품군이 호황을 누리던 낙수 효과는 사라졌다. AI용 최첨단 제품과 범용 제품의 시장이 완전히 분리되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둘째, ‘공급망의 지정학적 분단이다. 효율성 대신 안보 논리가 지배하며, 미국 중심의 ‘AI 블록과 중국 중심의 레거시 블록이 충돌하고 있다. 셋째, ‘생존을 위한 기술 임계점이다. 나노(nm)를 넘어 옹스트롬(Å) 단위의 미세 공정과 패키징 기술 없이는 시장 진입조차 불가능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존을 가를 2026년의 7가지 변수를 선정하고 이 변수들의 영향을 진단한다.

주목해야 할 7가지 변수

첫째, AI·HBM의 독주와 매진(Sold Out)’ 사태의 장기화

2026년 반도체 시장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AI 편식현상의 심화다. 생성형 AI와 데이터센터용 컴퓨팅 수요가 폭발하면서, 메모리 시장은 HBM과 고용량 DDR5 등 선단 공정 제품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등을 통해 2026년형 HBM 생산 물량이 모두 완판(Sold Out)’되었다고 공식화했다. 이는 엔비디아(NVIDIA) 등 빅테크 기업들이 차세대 AI 가속기에 탑재할 HBM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2026년은 12단 및 16단 적층 기술이 적용된 HBM4로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는 시점으로, 수율 안정화와 패키징 역량이 기업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반면, 이러한 ‘AI 쏠림은 범용 메모리 시장에 공급 절벽가격 왜곡을 동시에 야기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제조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HBM 생산을 위해 기존 D램 라인을 전환하면서, DDR4와 같은 레거시 제품의 생산 능력(Capacity)은 급감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2026년 주요 메모리 3사의 DDR4 생산량이 2025년 대비 20% 수준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로 인해 범용 D램 가격은 공급 부족으로 상승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는 PC 및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원가 부담으로 이어져 소비자가격 인상을 부추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둘째, ·디커플링과 중국의 트리플 아웃풋역습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스몰 야드, 하이 펜스(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을 넘어 전방위적 압박으로 진화하자, 중국은 물량 공세로 맞불을 놓고 있다. ‘스몰 야드, 하이 펜스란 마당은 좁게 잡되 담장은 높게 친다는 뜻으로, 미국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최첨단 기술(좁은 마당)에 대해서만 중국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높은 담장)하고 나머지는 허용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26년까지 자국 반도체 생산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이른바 트리플 아웃풋(Triple Output)’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술적 장벽 돌파다. 중국 SMIC 등은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없이도 심자외선(DUV) 장비를 활용한 멀티 패터닝 기술(SAQP)5nm(나노미터)급 칩 양산에 나서고 있다. 비록 생산 비용이 40~50% 더 높고 수율이 낮지만,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 이를 상쇄하며 화웨이(Huawei) 등 자국 기업의 AI 칩 자급자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26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 중심의 첨단 AI 블록중국 중심의 레거시 및 내수용 AI 블록으로 완전히 쪼개지는 분기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레거시 공정의 치킨 게임→중국 CXMT의 물량 공세

한국 기업들이 AI 반도체에 집중하는 사이, 범용(레거시) 메모리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중국 최대 D램 제조사 창신메모리(CXMT). 미국의 제재로 EUV 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CXMT는 전략을 수정해, 구형 장비(DUV)만으로 생산 가능한 DDR4LPDDR4X 등 범용 메모리에 올인하는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와 디지타임스 아시아의 데이터에 따르면, CXMT는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웨이퍼 증설을 단행 중이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2027년경 CXMT의 생산 능력은 전 세계 D램 시장의 약 10%를 차지하며, 현재 4위인 대만 난야를 제치고 글로벌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 구조를 뜯어보면, HBM과 고용량 서버 D램이 이익률은 높지만, 전체 웨이퍼 투입량(Volume)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PC, 모바일, 일반 가전, 사물인터넷(IoT)에 들어가는 LPDDR4, DDR4, 보급형 낸드가 차지한다. 중국은 바로 이 '허리' 시장을 노린다. AI 서버에는 못 들어가지만, 전 세계 노트북, 중저가 스마트폰, TV, 가전제품에는 중국산 칩으로도 성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2026년 시장은 첨단 제품의 품귀와 범용 제품의 중국발 공급 과잉이 충돌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일으킬 것이다.

넷째, 파운드리·패키징의 플랫폼 전쟁→옹스트롬 시대를 선점하라

2026년은 반도체 미세 공정의 단위가 나노미터(nm)에서 옹스트롬(A, 0.1nm)으로 전환되는 기술적 특이점이 될 것이다. 인텔은 ‘4년 내 5개 공정 완성(5N4Y)’ 전략의 마지막 퍼즐인 14A(1.4나노급) 공정을 2026년에 선보이며 기술 리더십 탈환을 노리고 있다.

이제 파운드리 경쟁은 단순히 칩을 위탁 생산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설계부터 생산, 그리고 이종 집적(Heterogeneous Integration)을 위한 첨단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턴키(Turnkey)’ 솔루션 역량이 승패의 핵심이다. 턴키 솔루션이란 마치 열쇠(Key)만 돌리면(Turn) 바로 작동하는 완성품처럼, 고객사가 설계도만 가져오면 반도체 생산부터 패키징, 테스트까지 일괄 처리해 완제품 형태로 납품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 사업을 모두 보유한 세계 유일의 종합반도체기업(IDM)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AI 칩 고객사들에게 이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략으로 TSMC 추격에 나선다. 특히 2026년 가동 예정인 미국 테일러 공장과 HBM4 패키징 역량의 결합이 엔비디아 등 빅테크 고객사 확보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다섯째, 덮쳐오는 그린 스톰→전력과 환경 규제

AI 데이터센터의 기하급수적인 전력 소비는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골드만삭스와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160% 이상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6년에는 일부 지역에서 전력망 용량 한계로 인한 병목 현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환경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과불화화합물(PFAS) 규제 논의는 2026년 중대 분수령을 맞는다. PFAS는 반도체 식각 및 세정 공정에 필수적인 쿨런트(냉각재) 등의 핵심 원료로, 대체 물질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만약 예외 조항 없이 규제가 강행될 경우 유럽 내 반도체 공급망 셧다운은 물론, 글로벌 장비 및 소재 수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공급망 셧다운공포가 커지고 있다.

여섯째, 소리 없는 위기→소재·부품 공급망의 불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네온(Neon), 크립톤(Krypton) 등 희귀 가스 공급망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업계는 재활용 기술 도입과 공급처 다변화로 급한 불을 껐으나, 우크라이나 의존도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반도체 노광 공정의 핵심 소재인 네온 가스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6년까지 가스 재활용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려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가격 폭등 사태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또한, 2026년에는 2nm 이하 초미세 공정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첨단 소재와 장비 부품의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일곱째, 한국 경제의 반도체 착시와 정책적 골든타임

한국 경제에 있어 2026년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과실을 누리는 해인 동시에, 그 의존도가 주는 구조적 취약성을 직시해야 하는 해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기관들은 2026년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1% 후반대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이는 여타 산업의 부진을 가리는 착시(Illusion)’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발 위기가 코앞인데 한국의 대응 속도는 더디다. 정책적 측면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제도적 기반은 다졌으나 골든타임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 우선 세제 혜택을 담은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를 통과하며 R&D 세액공제 일몰이 2031년까지 연장되고 시설 투자 공제율이 상향되는 등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핵심인 반도체 특별법은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이달 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한 특별법안은 그간 논란이 됐던 정부의 재정 지원(보조금) 근거를 명시하고, 인프라 지원 내용을 담아 업계의 숙원을 일부 해소했다. 그러나 산업계가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해 강력히 요구해 온 52시간 근무제 예외조항은 끝내 제외됐다. 여야는 이 문제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추후 논의하기로 미뤘지만,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 통과가 불투명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보조금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미국은 보조금으로 기술을 흡수하는데, 한국은 주 52시간 족쇄조차 풀지 못하고 있다보조금 지급 근거가 마련된 것은 다행이지만, 핵심 인력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메모리 1등을 넘어 ‘AI·시스템 파트너


2026년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고성장의 파도를 타면서도, ‘구조적 변곡점을 무사히 통과해야 하는 중대 기로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안주했다가는 AI 반도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에서 도태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가 메모리 제조 공장을 넘어 글로벌 AI·시스템 반도체의 핵심 파트너로 포지셔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HBM과 같은 고부가 메모리에서의 초격차 기술 유지는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팹리스(설계), 파운드리(생산), 패키징(후공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국내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나 AMD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을 단순한 부품 공급처가 아닌, AI 솔루션을 함께 실현하는 원스톱 플랫폼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특정 국가에 편중된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RE100 달성 및 유해 화학물질 대체 등 글로벌 환경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2026년 이후의 생존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