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유럽 1500억 유로 재무장 본격화
조달 65% 유럽산 의무화...한국 방산 직접 수혜 제한, 현지 생산 전략 필요
조달 65% 유럽산 의무화...한국 방산 직접 수혜 제한, 현지 생산 전략 필요
이미지 확대보기집행위원회 대변인 토마스 레니에는 브리핑에서 "튀르키예와 한국도 SAFE 가입 의사를 통보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오늘 확인서를 보낸 일본에도 적용된다"며 "이미 캐나다와는 이 문제에 대해 양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레니에는 "이제 이러한 요청을 검토할 것"이라며 "EU의 결정을 예측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침공 대응...유럽 최대 규모 방산 공동 투자
13일 디펜스미러닷컴 보도에 따르면, SAFE는 올해 5월 29일 EU의 '방위 2030 목표'에 따라 발표됐으며, 5월 27일 공식 채택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압박 및 관련 안보 우려에 대응해 만들어진 이 메커니즘은 EU 국가와 우크라이나, 유럽 경제 지역(EEA) 회원국인 노르웨이, 리히텐슈타인, 아이슬란드가 최대 1500억 유로의 대출을 통해 공동 방위 조달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서로의 방위산업에서 구매하는 것도 포함된다.
EU 가입 후보국과 안보·방위 파트너십 체결국도 공동 조달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방위 제품 부품 중 가치의 최소 65%는 유럽 내에서 조달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SAFE는 주로 EU 회원국을 대상으로 하지만, 제3국은 최대 35%의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지난 9월 9일 EU는 신청한 19개 회원국 사이에 SAFE 자금의 예비 배분을 발표했다. 폴란드가 437억3400만 유로(약 75조8600억 원)로 가장 큰 몫을 받았으며, 프랑스가 162억1700만 유로(약 28조1300억 원), 이탈리아가 149억 유로(약 25조8400억 원)를 차지했다. 참여국들은 11월 30일까지 국가 방위 계획을 위원회에 제출했다.
19개 국가가 계획을 제때 제출했으며, 15개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수입 유료를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참가 국가는 그리스, 그리스계 키프로스, 벨기에, 불가리아, 체코, 에스토니아, 스페인, 프랑스,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헝가리,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핀란드, 덴마크다.
캐나다 가입 완료, 영국은 협상 결렬
캐나다는 협상을 마친 뒤 지난달 2일 SAFE에 가입했다. 반면 영국과의 협상은 합의 없이 종료됐다. 한국과 터키는 제한되거나 대기 중인 범주에 머물러 있다. 두 국가 모두 가입 의사를 공개했으나 국가 계획을 제출하지는 않았다.
레니에는 일본의 신청과 관련해 "한국과 터키에 이어 일본의 요청도 다음 단계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SAFE 자금을 신청한 19개 EU 회원국이 제출한 국가 방위 계획을 현재 평가하고 있다며, 참여 수요가 "압도적"이라고 표현했다. EU는 회원국들의 신청 검토와 함께 일본, 한국, 터키 등 제3국의 참여 조건도 별도로 협의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 관계자들은 그리스와 그리스계 키프로스의 반대에도 EU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터키의 잠재 참여를 제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외교 관계자들은 터키의 제한된 역할이 EU가 비회원국과 방위 협력 의지를 입증하는 시험대라고 말한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기존의 방위산업을 이유로 터키의 포함을 지지하는 반면, 프랑스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SAFE는 유럽 방위산업의 통합, 공동 조달 가속화, 안보 위협에 대한 역내 강화를 목표로 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한국 경제안보가 바라봐야 할 지정학 질서 변화
한국 정부는 지난 11월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공식 체결하며 유럽 방산 시장 진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앞서 지난 9월 외교 당국이 EU 측에 방산 협력 참여 의사를 타진한 지 두 달여 만의 성과다. 이는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 사례로, 해양 안보와 사이버 위협 대응을 넘어 방위산업까지 협력 범위를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파트너십은 한국 방산 기업의 유럽 시장 저변을 확대하고, 한-EU 간 전략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유럽 각국이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국방비를 늘리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협력 체결은 'K-방산'이 유럽의 안보 공급망에 공식 편입될 기회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방산업계와 통상 전문가들은 EU의 핵심 방산 지원 프로그램인 '유럽 방위산업 강화 공동조달법(EDIRPA)'과 '방위산업 전략(EDIS)'의 혜택을 한국 기업이 직접 누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크라이나'다. EU의 공동구매 예산은 대부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거나, 지원으로 비어버린 회원국의 무기고를 채우는 데 우선 배정된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EU의 공동조달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해당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원칙이 유지되는 한, EU 펀딩을 통한 직접 수주 계약은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EU 내에서 확산하는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유럽산 우선 구매)' 기조도 K-방산에는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면 돌파'가 어렵다면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직접 무기 완제품 수출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 생산과 기술 협력을 통한 '유럽화 전략'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IP4(인도·태평양 4개 파트너국) 지위를 활용해 유럽의 재무장 전략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외교 파트너십을 지렛대 삼아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등 주요 방산 기업들은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 생산 시설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