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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韓 반도체, 2033년 '57조 시장' 정조준…AI·소부장 초격차가 승부처

메모리 1위 굳히고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영토 확장…'K-반도체' 2.0 시대 개막
지정학적 파고와 만성적 인력난은 '常數'…기술 리더십 유지할 '골든타임' 확보 총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표하는 'K-반도체'는 이제 메모리 편중을 넘어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로 영토를 확장하는 '2.0 시대'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표하는 'K-반도체'는 이제 메모리 편중을 넘어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로 영토를 확장하는 '2.0 시대'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또 한 번의 퀀텀 점프를 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AI), 5G,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K-반도체'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지는 모양새다.
2일(현지시각) 시장조사기관 레늅 리서치(Renub Research)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소자(Device) 시장은 2024년 214억5000만 달러(약 31조 원)에서 연평균 6.92%씩 성장해, 오는 2033년에는 391억7000만 달러(약 57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와 차세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칩 파워하우스'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메모리 초격차에 AI 엔진 달았다


성장의 핵심 동력은 단연 '메모리'와 'AI'의 결합이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증설과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의 보편화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 칩 수요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술력과 양산 능력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레늅 리서치는 글로벌 데이터 생성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국 기업들이 보유한 초미세 공정 노드와 수율 경쟁력이 빛을 발할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사격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자산'으로 규정, 세제 혜택과 R&D 자금 지원은 물론 'K-반도체 벨트' 구축을 통해 수도권 인근을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 기지로 육성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이 자국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에 사활을 건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이 2인3각으로 움직이며 생태계 경쟁력을 방어하고 있는 셈이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메모리 편중을 넘어라


주목할 점은 한국 반도체의 체질 개선이다. 과거 '메모리 외길'에서 벗어나 비메모리 분야로의 영토 확장이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AI 전용 프로세서와 모바일 SoC(시스템온칩), 파운드리(위탁생산) 서비스 강화에 사활을 걸었다. 팹리스(설계 전문) 분야에서도 리벨리온(Rebellions), 푸리오사AI(FuriosaAI) 등 토종 스타트업들이 고효율 NPU(신경망처리장치)를 앞세워 글로벌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시황에 따라 출렁이던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 5G·자율주행·IoT 등 미래 산업 전반을 지탱하는 구조로 고도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의 성과 지표들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지난 2025년 1분기,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 성숙도 확보와 함께 매출 79조 원을 넘겼고,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HBM3E 판매 호조에 힘입어 전년 대비 150% 이상 급증한 7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현대모비스와 삼성 파운드리의 차량용 반도체 협업 본격화 역시 국내 생태계 간 시너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인재 가뭄…'넘어야 할 산'


하지만 장밋빛 전망 뒤에는 여전히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가장 큰 위협은 대외 변수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과 공급망 블록화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에게 상시적인 리스크다. 과거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에서 경험했듯, 소재·부품 공급망의 특정 국가 의존도는 언제든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와 핵심 소재 국산화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사람'이 문제다. 기술은 고도화되는데 이를 감당할 고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반도체 설계(Architecture), 첨단 공정 엔지니어링, AI 하드웨어 분야의 석·박사급 인재 부족 현상은 고질적인 병목 구간이다. 대학과 기업이 계약학과 등을 통해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의 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R&D 비용 상승과 혁신 주기의 단축 또한 기업들이 감내해야 할 무거운 과제다.

2033년, 글로벌 톱티어를 향한 10년의 승부

제품별로는 IC(집적회로)와 센서가, 소재별로는 전력 효율이 뛰어난 SiC(탄화규소)와 GaN(질화갈륨)이, 용도별로는 자동차와 데이터 처리 분야가 향후 시장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향후 10년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1등'을 넘어 '토털 반도체 솔루션 허브'로 도약하느냐를 가르는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391억 달러(약 57조 원)라는 시장 규모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한국이 차지할 '대체 불가능한' 지위다. 지정학적 파고를 넘고 인재 가뭄을 해소하며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2033년 한국 반도체의 성적표를 결정지을 핵심 변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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