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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AI 수혜' 소외된 中 반도체 굴기…메모리 품귀에도 '실종 상태'

SK하이닉스·삼성전자 HBM 집중으로 범용 D램 가격 30% 급등, 공급난 심화
中 CXMT, 기술 격차 3년으로 좁혔으나 美 제재·성능 이슈로 시장 진입 한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범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30% 급등했다.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와 기술 격차로 인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범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30% 급등했다.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와 기술 격차로 인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1990년대 PC 붐 이후 가장 강력한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는 제퍼리스(Jefferies)의 분석이 제기됐다. 이러한 수요 급증은 데이터 저장 장치 전반에 걸친 심각한 공급 부족 현상을 초래하고 있으며, 특히 PC와 스마트폰 제조에 필수적인 D램(DRAM) 시장에서 그 여파가 두드러지고 있다. 레노버(Lenovo), 델 테크놀로지스(Dell), 샤오미(Xiaomi) 등 글로벌 완제품 제조사들이 핵심 부품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공급난은 이론적으로 중국의 반도체 공급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재의 결정적인 국면에서 중국 기업들의 모습은 사실상 '실종(missing in action)' 상태에 가깝다. 2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 및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챔피언들은 글로벌 시장 리더들을 따라잡기 위해 여전히 먼 길을 가야만 하는 한계가 뚜렷한 것으로 드러났다.

AI 인프라 확장이 불러온 '범용 메모리' 쇼크


AI 인프라의 급격하고도 거친 성장세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거인들의 전략 수정을 강제했다. 한국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제한된 자원과 생산 라인을 고대역폭(high-bandwidth) 데이터 저장 장치, 즉 HBM 생산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D램과 같은 덜 정교한 범용 반도체(less sophisticated semiconductors)의 공급 감소로 이어졌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Bernstein)의 애널리스트들은 이러한 공급처 전환의 결과로 12월까지의 3개월간 범용 D램의 계약 가격이 직전 분기 대비 약 30%나 급등했다고 추산했다. 새로운 생산 시설이 가동되어 공급이 안정화되기까지는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공급 부족 사태와 이에 따른 고물가 기조는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는 중국의 자국 칩 제조사들에게 열린 틈새시장이어야 마땅했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수년간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역량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국가대표' 격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상하이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며, 그 기업 가치는 420억 달러(약 6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CXMT는 지난달 한국의 경쟁사들에게 직접적인 도전장을 내밀며 최신 D램 규격인 DDR5를 공개하기도 했다.

기술 분석 기관인 테크인사이트(TechInsights)는 중국 그룹의 제품 기술력이 한국의 선두 주자들과 불과 3년 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 당시 그 격차가 두 배 이상 벌어져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추격 속도임은 분명하다.

'기술 장벽'과 '제재'에 가로막힌 中 반도체 굴기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번스타인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D램 시장에서 약 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CXMT와 중국 내 동종 업체들은 글로벌 공급 부족 사태를 자본화하여 점유율을 대폭 늘리는 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씨티(Citi)의 애널리스트들은 CXMT가 내년까지 DDR5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릴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해당 제품들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제품과 비교해 전력 소비(power consumption)와 폼팩터(form factor) 측면에서 여전히 성능이 뒤처진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미국 정부의 대중(對中) 기술 통제다. 워싱턴의 제재는 중국이 첨단 장비와 도구에 접근하는 경로를 차단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5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당국자들이 CXMT를 더 엄격한 제재 대상인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수출 통제 명단)'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중국 기업들이 현재의 호황기(moment)를 포착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시장의 주요 고객사들은 공급 불안에 대비해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윈스턴 쳉(Winston Cheng) 레노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1월 24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공급 부족을 견디기 위해 메모리 칩을 포함한 핵심 부품들을 비축(stockpiling)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위안칭(Yang Yuanqing) 레노버 최고경영자(CEO) 역시 11월 20일, 내년도 충분한 물량 확보를 위해 주요 공급업체들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언급했다.

한편 레노버가 11월 20일 발표한 실적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분기 조정 순이익은 5억 1200만 달러(약 7500억 원)로 25% 증가했으며, 매출은 205억 달러(약 30조 원)로 15% 상승했다. 이러한 실적 호조 속에서도 부품 확보 전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 전쟁의 최전선에서 소외된 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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