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도 가난해지는 이유…자산 격차와 구조적 비용의 덫“
이미지 확대보기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 쏠림 현상과 교육·국방 분야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비용 상승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 베이비붐 세대가 보유한 자산은 무려 85조 달러(약 12경4800조 원)에 이른다. 독자들은 이 천문학적인 부가 세대 간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부모 세대가 물려준 유산과 사회적 안전망 혜택을 입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격차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가격표만 보고 가치는 잊었다"… 변질된 자본주의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부유층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부를 이동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부가 무책임하게 돈을 풀면서 화폐(달러) 가치는 떨어졌고, 월급쟁이 중산층의 지갑은 얇아진 반면 자산가들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다.
WP의 한 독자는 이를 두고 "과거 '위대한 세대'는 희생과 가치를 알았지만, 지금은 '모든 물건의 가격표는 알면서도 그것을 만들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나 진정한 가치는 모르는' 사회가 됐다"고 탄식했다. 돈으로 환산되는 이익만 좇느라, 미래 세대가 짊어질 빚이나 환경 파괴 같은 '보이지 않는 비용'은 무시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교육비가 미친 듯이 오르는 진짜 이유, '보몰의 함정'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교육비 급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옛날보다 교육비는 2.5배 더 쓰는데 아이들 성적은 왜 그대로냐, 학교가 방만하게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이를 학교의 잘못이 아닌 '보몰의 비용 병(Baumol’s cost disease)'이라는 경제 원리로 설명한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자동차 공장은 기계를 도입해 1시간에 1대 만들던 것을 10대 만들 수 있다. 생산성이 늘었으니 직원 월급을 올려줘도 차 가격은 유지하거나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학교나 이발소는 다르다. 교사가 1시간에 가르칠 수 있는 학생 수나, 이발사가 1시간에 깎을 수 있는 머리 수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기계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장 근로자의 월급이 오를 때, 교사나 이발사의 월급을 안 올려주면 이들이 모두 그만두고 다른 일터로 떠난다는 점이다. 결국 교육 서비스의 생산성(성적)은 그대로인데, 사회 전반의 임금 수준을 맞추려다 보니 등록금(비용)만 계속 오르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비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필수적인 서비스업이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과도 같다.
국방비의 눈속임, 그리고 '의회의 욕심'
국방비 문제 역시 '보이는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공식적으로 미국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이라고 하지만, 퇴역 군인 지원 예산 등 흩어져 있는 관련 비용을 다 합치면 실제 국민이 부담하는 몫은 5%에 육박한다. 마치 자동차를 살 때 찻값만 생각하고, 매달 들어가는 기름값과 보험료, 수리비는 계산에서 뺀 것과 같은 '눈속임' 셈법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경고했던 '군산복합체(군대와 방위산업체의 유착)'의 진실이다. 당초 원문은 '군·산·의회 복합체'였다. 방위산업체는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국회의원(의회)은 자기 지역구에 무기 공장을 유치해 표를 얻으려 한다. 이 때문에 군대에서 굳이 필요 없다고 해도 의회가 나서서 국방예산을 늘리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한편, 재정 낭비를 줄이기 위해 '1달러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종이돈은 금방 헐어서 자주 새로 찍어내야 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캐나다처럼 1~2달러는 동전으로 바꾸고 지폐는 5달러부터 쓰게 하면 세금을 상당히 아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경제, '늙어가는 부(富)'와 '서비스 물가'의 경고
이번 WP의 논쟁은 고령화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부의 동맥경화'다. 미국처럼 한국도 5060 베이비붐 세대에 자산이 집중돼 있다. 이 돈이 부동산에 묶여 흐르지 않으면 청년층은 기회를 잃고 내수는 말라붙는다. 상속·증여세 논의를 부자 감세가 아닌, 자산이 경제 전체로 돌게 하는 '효율적 배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경고한다.
둘째, '서비스 물가'의 불가피한 상승이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라 공산품 가격은 싸지만, 교육·의료·돌봄 등 서비스 비용은 '보몰의 비용 병'에 따라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이를 무조건 억누르면 소아과 대란처럼 필수 서비스가 붕괴할 수 있다. 늘어나는 비용을 정부와 가계가 어떻게 나눌지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셋째, 인구 감소 시대의 국방비다. 우리 국방비도 무기 구입비뿐만 아니라, 병사 월급 인상 등 사람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포함해 국방 예산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