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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가능한' 일본 시동…빗장 풀린 ‘일본산 미사일’, K-방산 턱밑 추격

일본, ‘평화헌법’ 족쇄 풀고 미사일 수출·군비 증강 ‘가속 페달’…인도·태평양 재무장 러시
단순한 무기 구매국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직접적인 ‘안보 제공자’로 전환
1990년대 미쓰비시 전기가 노후한 MIM-23 호크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03식 시스템은 트럭에 장착된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로, 완전 도로 이동식 가능하며 일본 지상군에 의해 배치된다.사진=텔레그램 채널, 군사일본이미지 확대보기
1990년대 미쓰비시 전기가 노후한 MIM-23 호크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03식 시스템은 트럭에 장착된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로, 완전 도로 이동식 가능하며 일본 지상군에 의해 배치된다.사진=텔레그램 채널, 군사일본
일본이 오랫동안 스스로 채웠던 평화헌법무기 수출 금지라는 족쇄를 풀고 인도-태평양 안보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해양 팽창과 북한,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필리핀에 사상 첫 국산 요격 미사일 수출을 타진하는 한편, 호위함과 잠수함 건조 속도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추가 예산을 쏟아부었다. 유럽을 휩쓴 재무장 열풍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붙으며 방위산업 시장의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살상무기 금지성역 깨졌다… 필리핀에 대중국 방어망구축


일본이 전수방위(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 원칙의 마지막 성역이나 다름없던 살상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사실상 폐기하는 수순에 돌입했다.

군사 전문 매체 아미 레코그니션(Army Recognition)’은 지난달 30(현지시각) 일본 정부가 필리핀과 03식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Type 03 Chu-SAM) 수출을 위한 비공식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도쿄와 마닐라 당국은 현재 일본의 엄격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탓에 묶여 있는 수출 규제를 2026년까지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전제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현행 지침은 구조, 수송, 경계, 감시, 기뢰 제거 등 5가지 비살상 분야로 수출을 제한한다.

하지만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내각은 내년 상반기 중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이 5가지 유형 제한을 철폐하고, 완전한 살상 무기 체계의 해외 이전을 허용하는 지침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필리핀이 도입을 검토 중인 ‘03식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은 미쓰비시 전기가 개발한 일본 육상자위대의 주력 방공 무기다. 노후화한 미국제 호크 미사일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이 시스템은 트럭에 탑재해 도로 위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기동성을 갖췄다.

사거리는 약 50km, 요격 고도는 10km 내외이며 마하 2.5의 속도로 비행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시스템의 다중 교전 능력이다. 능동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통해 약 100개의 공중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고, 이 중 12개 표적과 동시 교전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 시스템이 필리핀에 배치될 경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에서 중국 군용기와 순항미사일의 접근을 거부하는 강력한 방공(A2/AD) 거점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한다. 교도통신 등 외신은 이번 수출 논의가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동중국해에서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대중국 포위망을 완성하려는 미··필리핀 3국 안보 협력의 결정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JS 모가미(FFM-1) 및 JS 쿠마노(FFM-2). 사진=일본자위대이미지 확대보기
JS 모가미(FFM-1) 및 JS 쿠마노(FFM-2). 사진=일본자위대


돈으로 시간을 산다79800억 원 풀어 함정 건조 속도전


수출 규제 완화와 더불어 일본 정부는 자국 전력 강화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해군 전문지 네이벌 뉴스(Naval News)’는 지난달 28일 일본 정부가 2025 회계연도 보정예산(추가경정예산)안에 방위비 8472억 엔(79800억 원)을 추가 승인했다고 전했다.
이번 예산의 핵심은 시간 단축이다. 일본 방위성은 함정과 항공기의 조기 전력화를 위해 1222억 엔(11500억 원)을 배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최신형 스텔스 호위함인 모가미급 2척 건조에 115억 엔(1080억 원), 성능을 대폭 개량한 신형 모가미급(New FFM) 2척에 29억 엔(270억 원), 그리고 최신예 타이게이급 잠수함 4척 건조에 393억 엔(3700억 원)을 선투입한다.

방위성 대변인은 네이벌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예산은 미래에 지급할 건조 비용을 앞당겨 집행하는 것으로, 조선소와 방산 기업들이 자금을 미리 확보해 자재를 구매하고 작업을 서두를 수 있게 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해상 위협이 날로 거세지는 상황에서 전력 공백을 하루라도 빨리 메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해상자위대는 현재 2032년까지 총 12척의 신형 모가미급 호위함을 실전 배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존 호위함보다 적은 인원으로 운용이 가능하면서도 강력한 대기뢰전 및 대잠전 능력을 갖춘 모가미급은 인력난을 겪는 자위대의 고민을 해결할 핵심 전력으로 꼽힌다.

잠수함 전력 역시 기존 오야시오급, 소류급에 이어 타이게이급을 주축으로 재편하며 수중 억지력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유럽 넘어선 인도·태평양 머니 무브… 호주 방산주 200% 폭등


일본의 공격적인 행보는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의 군비 증강 흐름과 맞물려 있다. 영국 금융 매체 머니위크(MoneyWeek)’는 지난달 30글로벌 방위 산업의 호황이 유럽을 넘어 인도-태평양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이 지역의 안보 지형 변화가 투자 지도를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의 핵심 동맹이자 남태평양의 병참 기지 역할을 하는 호주의 방산 기업들이 최대 수혜주로 떠올랐다. 중국의 해양 진출에 맞서 호주 정부가 해군력과 기지 인프라 확충에 나서면서 관련 기업의 실적이 수직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호주의 조선업체 오스탈(Austal)’이다. 고속 순찰정과 지원선 건조에 특화된 오스탈은 넓은 해역을 감시해야 하는 인도-태평양 국가들의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최근 호주 해군에 9번째 신형 순찰정을 인도했으며, 피지와 사모아 등 태평양 도서국에도 경비함을 공급하며 영향력을 넓혔다. 오스탈의 지난 회계연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두 배로 껑충 뛰었다.

군사 기지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인프라 기업 벤티아(Ventia)’와 드론 방어 체계 전문 기업 드론쉴드(DroneShield)’도 주목받는다. 벤티아는 호주 국방부로부터 27억 호주달러(25900억 원) 규모의 기지 서비스 계약을 따내며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드론의 시대가 열리면서 안티 드론 기술을 보유한 드론쉴드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이 회사는 레이더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해 적 드론을 무력화하는 기술을 앞세워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210% 폭등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톰 베일리 퓨처 오브 디펜스(Future of Defence) ETF’ 연구 책임자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유럽의 재무장에 쏠려 있는 동안, 일본은 1945년 이후 최대 규모의 국방비 증액을 시작했고 호주와 한국, 인도 역시 예산을 늘리고 있다유럽 다음은 아시아가 방위 산업의 거대한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미일 요격 체계 비교. 제작=글로벌이코노믹 이미지 확대보기
한미일 요격 체계 비교. 제작=글로벌이코노믹


일본의 보통국가화’, 한국엔 기회이자 위협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 복합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안보 측면에서는 한··일 공조를 통해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산업 측면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무기 수출 금지원칙 탓에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일본이 규제를 풀고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동남아시아와 유럽 시장을 공략 중인 한국 방산 기업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특히 필리핀 수출을 추진 중인 ‘03식 지대공 미사일은 한국의 천궁-II’와 시장이 겹칠 수 있는 중거리 요격 체계다.

또한, 일본이 미국과의 상호 접근 협정(RAA)을 확대하고, 자국산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미국에 역수출해 미국의 재고 부족을 메워주는 방식은 향후 글로벌 방산 공급망에서 일본의 지분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법적 제약을 걷어내고 산업과 안보를 결합하는 과정이 매우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일본의 움직임은 단순히 자국 방어를 넘어 지역 안보의 틀을 바꾸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다. 마닐라의 해안에서 도쿄의 의사당, 그리고 시드니의 주식시장까지 이어지는 이 재무장 벨트는 앞으로 수년간 아시아 경제와 안보 지형을 뒤흔들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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