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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중국, '과학기술 자립' 총력전…'혁신 질식' 권위주의의 딜레마

4중전회, '신질 생산력'·내수 확대로 5% 성장 사수…'현대 산업 시스템' 구축 천명
시진핑 '사회 통제' 강화…"혁신 필요하나 창의성 질식시키는 모순" 지적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20세기 초 공업·지적 대국이었던 프랑스·독일·영국은 현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 민주주의 국가는 불안한 정치 정세 속 우파 정당이 신장하며 정치와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전체회의'라는 정책 결정 메커니즘을 통해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기능해왔다. 중국 공산당은 10월 하순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열었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의 국가 중장기 발전 계획인 15차 5개년 계획 초안을 심의하고 확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서방 언론의 보도는 비교적 적었으나 중앙위원과 후보 총 315명이 참석해 향후 5년간의 광범위한 경제정책 목표와 주요 국정 방향을 논의했다. 이 안은 내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채택·공표될 전망이다.

이번 4중전회의 배경에는 중국 지도부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제 상황이 있다. 3분기(7~9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8%로, 정부 목표치 5%를 밑돌았다. 9월 주택 가격은 지난 1년 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소매판매 증가율 둔화와 부동산 투자 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4중전회는 내수 확대 방침을 재확인했다. '과잉 생산능력' 축소와 '내수 중심 경제' 전환을 통해 고품질 발전을 강조한 것이다.

6일(현지시각) 포브스 저팬에 따르면 4중전회에서 제시된 핵심 목표 중 하나는 '과학기술의 자립자강을 현저히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인공지능(AI) 외에도 양자컴퓨팅·생명공학·우주항공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신질 생산력(new productive forces)' 육성에 주력한다는 의미다. 이는 미국과 유럽 등이 추진하는 전략적·자율적 기술 생태계 발전 전략과 유사하다.
특히 '현대 산업 시스템 구축'이 당의 최우선 의제로 부상했다. 이는 화학 등 기존 산업의 과잉 생산 능력을 감축하는 반(反)'네이쥐안(과당 경쟁)' 정책과 맞물린다. 신에너지·AI·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 산업 구축에 중점을 두며, '지능화'·'디지털'·'녹색화'가 과거 중시되던 서비스업보다 우선시된다. 또한 내수 소비 확대, 소득 분배 개선, 중산층 확대 정책을 통한 경제 체질 변화와 함께 지방재정 개혁 및 부채 관리 등도 강조되었다.

이러한 새 정책의 전략적·경쟁적 성격은 매우 명확하며, 미국을 주요 경쟁 상대로 명백히 겨냥하고 있다. 이번 4중전회 결정은 무역 전쟁과 미국의 기술 수출 규제에 대한 분명한 응답인 셈이다. 최근 미·중 정상이 합의한 무역 전쟁 '휴전'이 중국의 기술 자립 달성을 위한 시간 벌기 전략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자국 기술 생태계 강화를 통해 시진핑 주도의 장기 집권 기반을 굳히려는 전략이다.

'기술 자립' 가속페달…'혁신'은 질식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이번 4중전회에서 드러난 두 가지 방향성, 즉 '시진핑 주석하의 엄격한 정치적·사회적 통제 강화'와 '질 높은 경제 추구'라는 야심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기술 혁신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혁신을 질식시키는 사회·정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억압적 체제가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며, 실제 해외로 이주하는 창의적 인력 증가가 이 문제를 시사한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의 명백한 오류다. 실제로 이번 4중전회에서는 중앙위원 11명이 당적 박탈 등으로 교체됐는데, 이는 2017년 이래 최대 규모이며 대부분 전직 군 고위 관료가 차지했다. 이는 권위주의 강화 기조를 명확히 한 것이다.

'테크노 오토크라시'의 딜레마


캐나다의 중국 분석가 댄 왕의 신간 '브레이크넥: 중국의 미래를 설계하려는 탐구'는 이 점을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는 엔지니어 주도의 지도층이 중국 경제 성공의 중요 요인 중 하나라는 이론을 충분히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4중전회에서 부각된 하이테크 집중과 코로나19 대응, '한 자녀 정책' 등 사회 분야의 끔찍한 실패를 동시에 언급한다.

왕의 견해에 따르면, 중국은 양자컴퓨팅 같은 분야에서 선구적 발견을 할 과학자나 연구자를 찾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 점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진짜 과제는 이러한 기술을 사업화·상업화하고, 나아가 국제적 규모로 전개할 기업가를 찾는 데 있다.

이번 4중전회를 통해 중국은 2035년까지 선진 중진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기술 혁신 및 경제 성장과 강력한 정치 통제라는 두 개의 축을 유지하는 '테크노 오토크라시(기술 권위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모습이다. 결국 중국은 기술 강국으로 성장을 도모하면서도 사회 정치적 억압을 고수하는 이중적 전략을 명확히 한 셈이다. 이는 경제 혁신과 자유로운 창의성 간의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며, 향후 중국의 행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어쨌든 중국은 당분간 첨단기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중국이 여기에 몰두한 나머지,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최근 중국 외무장관 외에 만날 고위 인사가 없다는 이유로 베이징 방문을 연기해야 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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