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칼라일, 상하이 오피스 '반값 손절매'…은행권도 동반 손실
베이징·상하이 공실률 40% 육박…전문가들 "잃어버린 10년" 경고
베이징·상하이 공실률 40% 육박…전문가들 "잃어버린 10년" 경고

'세계의 시장'으로 부상하던 중국 부동산에 투자했던 세계적 자본이 막대한 손실의 덫에 걸렸다. 지난 15년간 약 1400억 달러(약 198조 원)가 투입됐지만, 전례 없는 공급 과잉과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며 자산 가치가 폭락, 투매가 확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칼라일 그룹 등 대형 기관들마저 원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자산을 처분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24년 말부터 이들 운용사는 매입 원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중국 내 상업용 건물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해당 자산에 자금을 조달한 HSBC, 스탠다드차타드(SC) 등 세계적 은행들도 손실을 보고 있으며, 중국 부동산 대출의 부실 증가를 공식 경고했다.
MSCI 리얼 캐피털 애널리틱스 집계에 따르면 외국 자본은 지난 15년간 중국의 오피스 타워, 물류창고, 쇼핑몰, 데이터센터 등에 1400억 달러(약 198조 원)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장밋빛 수요 예측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시장은 이미 붕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2023년과 2024년 중국 상업용 부동산 투매(Distressed Sale) 규모가 총 1140억 위안(약 16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전체 거래의 22%로, 사상 최고치다.
문제는 버틸수록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이다. 외국인 투자의 핵심 자산인 베이징과 상하이 오피스의 추정 시장 가치는 2019년 고점 대비 최소 40% 폭락했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전역의 평균 오피스 공실률은 약 25%에 육박했으며, 주요 대도시 공실률은 20%에서 40%를 넘나들며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상하이의 신규 오피스 공급은 2028년까지 줄어들기 어려워 보여 회복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중국 경제는 2024년 저물가와 미국의 고율 관세 등으로 성장 압박을 받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과도한 부채와 '3대 레드라인' 같은 규제 강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25년부터 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와 주택 구매 절차 간소화 조치를 내놓았지만, 구조적인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반값'에도 못 판다…글로벌 IB '눈물의 손절매'
처참한 매각 사례도 속속 확인된다. 칼라일 그룹이 한국 국민연금(NPS) 자금으로 운용하며 2015년 14억6000만 위안에 매입했던 상하이의 31층 오피스 타워 '더 크레스트'는 1년 넘게 새 주인을 찾지 못하다 2024년 말 8억2600만 위안에 겨우 팔렸다. 10년 만에 투자 원금의 57%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2015년 4.6%에 불과했던 공실률은 매각 당시 23%를 넘어섰다. 매각 가격은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금 10억 위안에도 미치지 못했다.
블랙록 역시 상하이 '워터프런트 플레이스' 오피스 건물 두 채의 대출금 상환을 포기하고 자산을 넘겼다. 2018년 매입 당시 투입했던 지분 투자액 4억2000만 위안은 전액 손실 처리됐다. 채권단인 SC 컨소시엄은 이 건물을 올해 3월 약 6억8000만 위안에 매각해, 7억8000만 위안 규모의 대출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했다.
'부실 채권 대가' 오크트리도 발목…물류창고도 '한숨'
'부실 채권(NPL) 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마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오크트리는 2021년 말 헝다 그룹의 4억 달러 대출 불이행에 따라 장쑤성 치둥의 대형 리조트 '해상 헝다 베니스' 프로젝트를 압류했다. 헝다가 방치했던 공사를 재개하며 300억 위안이 투자된 이 리조트를 정상화해 대출금을 회수하려 했지만, 인근 아파트 가격이 2019년 제곱미터당 1만 위안에서 4000위안으로 폭락하는 등 자산 가치 하락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공급 과잉은 오피스뿐만 아니라 물류 시장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 리츠인 캐피타랜드 차이나 트러스트에 따르면, 일부 물류 창고 임대주들은 공실을 막기 위해 기존 임대료보다 약 25% 낮은 요율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블랙스톤 등 대형 투자자들의 물류 자산 매각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극도로 어둡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패트릭 웡 수석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 부동산에 발이 묶였다"며 "유일한 탈출구는 현금이 풍부한 중국 국유기업이지만, 그들조차 시장 개선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피치 레이팅스의 레베카 탕 이사는 "더 많은 투매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건전한 자산 가치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니컬러스 윌슨 아시아 부동산 담당은 "시장이 조만간 회복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2026년까지 임대료 하락이 계속되고 2030년의 건물 명목 가치는 2020년보다 낮아져, 중국 상업용 부동산 부문이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투자자들에게 단기 수익보다 중장기 전략 수립과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