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조원 파운드리 계약 이어 2나노 AI칩 공동 개발…완전자율주행·AI 로봇 시대 선점 포석
車 제조사 넘어 'AI 하드웨어 기업' 변신 선언…삼성은 TSMC 추격 발판 마련
車 제조사 넘어 'AI 하드웨어 기업' 변신 선언…삼성은 TSMC 추격 발판 마련

세계 전기차 1위 기업 테슬라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심장부인 경기도 화성에 핵심 연구개발 조직을 신설하고 인력 채용에 나서면서, 두 회사 사이의 '반도체 동맹'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최근 165억 달러(약 23조 원)에 이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에 이은 이번 행보는, 테슬라가 삼성과의 협력 관계를 단순 생산 위탁을 넘어 설계 단계까지 확장하려는 명확한 신호로 풀이된다. 앞으로 다가올 완전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로봇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독자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차량, 로봇, AI 서버에 필요한 모든 연산 시스템의 수직 계열화를 목표로 하는 'AI 하드웨어 기업'으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화성에 둥지 튼 테슬라, 설계 인력 흡수
18일 디지타임스 등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최근 경기도 화성에서 근무할 반도체 기술자 채용 공고를 냈다. 모집 분야는 IC(집적회로) 설계 기술자와 SoC(시스템온칩) 회로 설계 및 검증 책임자 등 반도체 설계의 핵심 직군을 망라한다. 특히 지원 자격으로 전기·전자 공학 또는 반도체 공정 설계 분야에서 최소 3년에서 7년 이상 경력을 요구한 점이 눈에 띈다. 단순한 연락사무소나 지원 조직이 아닌, 즉시 실무에 투입할 숙련된 핵심 인력을 확보해 본격적으로 자체 칩 설계 역량을 강화하려는 테슬라의 의중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테슬라의 이번 한국 거점 마련을 '기술 자립'을 향한 광범위한 전략의 핵심 단계로 평가한다. 그간 세계 반도체 공급망 불안으로 여러 차례 생산 차질을 겪었던 테슬라가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안정적인 생산 협력사인 삼성전자와 가까운 거리에서 협력해 공급망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테슬라가 이전에도 미국 현지에서 '실리콘 모듈 공정 기술자'를 모집한 이력이 있으며, 이 또한 AI6 칩 개발과 직결된 움직임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2나노 공정으로 그리는 미래차 청사진
테슬라의 화성 진출은 2025년 7월 삼성전자와 체결한 파운드리 계약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테슬라는 삼성전자와 8년(2025~2033년) 동안 총 165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 따라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최신 반도체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인 'AI6'를 생산하며, 본격적인 양산은 2026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AI6 칩은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FSD) 시스템과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 AI 데이터센터의 학습 플랫폼을 위해 독자 설계하는 차세대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다. 이 칩은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3나노 공정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2세대 2나노미터(SF2P) 공정을 기반으로 제작된다고 알려져 기술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첨단 공정은 고성능·저전력·고밀도 회로 설계를 가능하게 하며, 테슬라가 엔비디아나 TSMC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기술 독립을 이루려는 전략적 행보를 분명히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테슬라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있는 화성에 연구개발 거점을 마련하면서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을 단순 위탁생산을 넘어 칩 구조 설계부터 검증, 최적화까지 함께하는 '공동 기술 개발 체계'로의 진화로 받아들인다. 미국 기업이 한국 기술 생태계에 직접 R&D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드문 사례로, 한미 반도체 동맹이 한층 구체화했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번 동맹 강화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를 추격하는 삼성전자에게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두 거대 기술 기업의 동맹이 앞으로 자율주행차와 AI 로봇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