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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 투자 유치와 이민 단속 '엇박자'…현대차 사태로 드러난 비자 딜레마

현대차 조지아 공장서 한국인 300명 체포…전문인력 비자 부족 현실화
반도체·배터리 숙련공 태부족…경직된 제도가 IRA·반도체법 발목
2025년 9월 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 공장 부지에서 중장비 위로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바로 이곳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기술인력 300여 명을 체포했다. 이 사건은 미국의 강경한 이민 정책과 아시아 기업 투자 유치 정책 간의 모순을 드러내며 전문인력 비자 부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2025년 9월 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 공장 부지에서 중장비 위로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바로 이곳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기술인력 300여 명을 체포했다. 이 사건은 미국의 강경한 이민 정책과 아시아 기업 투자 유치 정책 간의 모순을 드러내며 전문인력 비자 부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사진=AP/연합뉴스

미국이 아시아 제조업 강국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동시에 강경한 이민법을 집행하는 두 정책 목표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최근 조지아주 현대자동차-배터리 합작공장(일명 메타플랜트)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한국인 기술인력 300여 명을 체포한 사건은, 미국 내 첨단 제조업 부활 전략이 '전문인력 비자 부족'이라는 제도적 병목에 부딪혔음을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사태는 외교적 합의에 따라 구금된 인력들의 조기 귀국으로 일단락될 전망이지만, 아시아 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건설이 늦어지고 비용이 늘어나는 등 후폭풍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합법적으로 매우 똑똑하고 훌륭한 기술 인재를 데려올 수 있도록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언급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일부 인정했다.

◇ 美 제조업 부활의 역설…숙련 기술인력은 부족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미국 내 숙련 기술인력의 고질적인 부족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WSJ이 전했다. 장기간 생산을 해외로 이전(Offshoring)하면서 제조업 인력 기반이 무너진 탓에, 미국 내 노동력만으로 첨단 산업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미국은 반도체, 바이오와 같은 첨단 산업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인력 공급망이 확충되지 않는다면 2030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약 6만7000개의 기술직 일자리가 공석으로 남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기업들은 바이든 및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미국 제조업에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조지아주 현대차 '메타플랜트'의 한국인 노동자 구금은, 한국이 약 3500억 달러(약 485조 원)의 대미 투자에 합의한 무역 협상을 양국이 마무리 짓는 시점에 발생했다. 기업들은 미국 인력을 고용하고 훈련할 뜻은 충분하지만, 초기 공장 건설과 생산라인 설치 단계에서는 미국인만으로 촉박한 일정을 맞출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대규모 사업 현장에는 본국에서 온 기술자와 협력업체 직원 수백 명을 투입하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번에 체포된 한국인 300여 명 가운데 약 250명도 현대차나 LG에너지솔루션의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미 당국은 이들 중 상당수가 비자 허용 범위를 넘어서거나 체류 기간을 넘기는 등 불법 취업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 호주엔 주고 한국엔 안 준 '특별 비자'


전문인력을 장기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취업 비자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술·엔지니어링 등 전문 직종에 발급하는 H-1B 비자는 연간 총 발급량이 10만 건에 미치지 못하도록 제한돼 있어, IT 업계까지 뛰어든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한국, 일본, 대만 등 통상 조약 체결국 기업 주재원에게 발급하는 E-2 비자 역시 승인 기준이 한층 엄격해졌다. 법무법인 국민이주의 홍장환 미국 이민 문제 전문 변호사는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급증하며 비자 신청이 몰리자 심사가 까다로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현지에서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일정에 맞춰 공장을 가동할 인재를 신속하게 찾고 배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제약은 미국이 특정 국가에 부여하는 차별적인 비자 정책 탓도 크다.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호주 국민에게는 해마다 1만 개가 넘는 특별 전문직 비자(E-3)를 발급해주지만, 한국은 2012년 한미 FTA 협상 당시 이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2023년 대만 TSMC가 애리조나 공장 건설을 위해 기술자 500명을 파견하려다 현지 노조의 반발에 부딪혔던 사례처럼 갈등을 낳고 있다.

지난 7월 영 김(공화·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등은 전문 지식을 갖춘 한국인에게 해마다 1만 5000개의 특별 전문직 비자를 따로 배정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직 미국 무역 협상가인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의 웬디 커틀러 부회장은 "한국 역시 2012년 한미 FTA 협상 당시 호주와 같은 특별 비자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결국 관철하지 못하고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포함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투자가 미국의 우선순위인 만큼 장기적인 해결책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이 협력업체 관리를 강화하고 위법 소지가 있는 비자 활용을 줄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특별 전문직 비자 신설 같은 입법 해결이나 현지 인력 양성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공장 가동 지연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 과학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 혜택에도 차질을 줄 수 있어 미국 정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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