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시장 반응 테스트' 나선 것...법적 장벽 높지만, 해임 위협 만으로도 나쁜 선례"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곧 파월 의장을 해임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고 이후 시장은 요동쳤다. 미국 주식과 달러 및 장기 국채 가격이 빠르게 하락했고, 단기 국채 가격은 상승했다. 트럼프가 후임 연준 의장을 누구로 지명하든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추측이 단기 국채 랠리를 촉발했다.
그렇지만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을 해임할 계획이 없다”고 번복했고 시장은 되돌림을 연출했다. 파월 의장은 그동안 트럼프로부터 “금리 인하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빈번한 비판을 받아 왔다.
블룸버그는 이날 시장 반응이 비교적 제한적이었던 데에 대해 트럼프의 ‘허세성 발언’에 대한 학습 효과와 미국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이번 사태를 통해 많은 투자자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실제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고 진단했다. 파월 의장을 해임하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통화정책 독립성이 사실상 종식되고 결국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부상했다는 것이다.
인테그리티 에셋 매니지먼트의 조 길버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에서는 이번 발언을 ‘신빙성 있는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이는 매우 불안한 상황으로, 트럼프가 실제 파월의 해임을 강행할 경우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떠보는 일종의 ‘시장 반응 테스트’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지만 “결국에는 파월 해임을 강행하기엔 법적 장벽이 너무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웰스파고의 에릭 넬슨 거시전략가 등은 파월 의장 해임이 경제와 시장에 해답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자산시장 반응을 통해 트럼프에게 각인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언제’보다는 ‘누가 후임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퍼시픽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PIMCO·핌코)의 빌 그로스 공동창업자이자 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소셜미디어 X에 “만약 트럼프가 새 의장을 통해 연준의 정책 기조를 장기적으로 바꾼다면, 미국 국채 수익률 곡선이 점점 더 가팔라지고, 달러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의장 해임 문제를 거론한 것 자체가 금융시장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금융시장이 정치적으로 독립된 중앙은행 시스템에 오랫동안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진행된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연준의 독립성 유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 “중앙은행에 정치가 개입되면 종종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은 올해 내내 연준의 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파월 의장을 강하게 비판해 왔고, 워싱턴DC에 위치한 연준 본청사 개보수 비용 증가 문제를 새로운 공격 소재로 삼고 있다.
전날 기자들이 해당 개보수 비용이 파월의 해임 사유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트럼프는 “어느 정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하며 해임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찰스 슈왑의 캐시 존스 수석 채권 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하겠다고 위협한 것만으로도 나쁜 선례가 된다고 비판했다.
도이체방크의 조지 사라벨로스 글로벌 외환 전략 총괄은 지난 주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만약 트럼프가 실제로 파월을 강제로 물러나게 한다면, 그다음 24시간 동안 무역 가중 달러 지수가 최소 3~4% 하락하고 채권 시장에서는 수익률이 30~40bp 급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즈호 인터내셔널의 조던 로체스터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거시전략 책임자는 “이 사안은 시장 신뢰를 낮추고, 금리 인하 기대를 키우며, 달러 약세와 기간 프리미엄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트럼프의 부인으로 일단 시장 반응 속도를 늦췄지만, 투자자들은 이제 몇 달 후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