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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제이미 다이먼 "사적 신용 시장, 2008년 위기 재현될 수도"…JP모건은 왜 68조원 투자하나

위기 경고하면서 시장 붕괴 땐 '이익 극대화' 노리는 양면 전략
월그린스 인수금융 계기로 본 은행-비은행 경계 붕괴의 서막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 그는 사적 신용 시장이 2008년 금융 위기를 재현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시장 붕괴 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68조 원을 투입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 그는 사적 신용 시장이 2008년 금융 위기를 재현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시장 붕괴 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68조 원을 투입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사적 신용(Private Credit) 시장이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부를 수 있다."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CEO)의 공개적인 경고다. 그러나 정작 JP모건은 약 2조 달러(약 2760조 원) 규모로 성장한 이 시장에 68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가장 공격적인 투자자로 나서고 있다. 위기를 경고하면서 동시에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다이먼의 역설적인 전략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3일(현지시각) 집중 조명했다.

다이먼의 경고는 구체적이었다. 그는 지난 2월 마이애미 로이스 호텔에서 열린 고객 행사 연단에 서서, 빚 많은 기업에 대한 규제 없는 대출 붐이 2008년 금융 위기를 촉발했던 상황과 판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직접 대출 일부는 좋지만, 모든 참여자가 잘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문제를 일으킨다"며 "2008년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러더스가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어 '형편없는 모기지 회사'를 인수한 것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고 과거의 실패를 상기시켰다.

이런 경고가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JP모건은 사적 신용 시장에 500억 달러(약 68조9650억 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부터 100건 넘는 거래에서 100억 달러(약 13조7930억 원)를 집행한 데 이은 대규모 확장 결정이다. 블랙스톤, 아레스 매니지먼트 같은 비은행 금융사들이 주도해 온 이 시장은 예금자 보호를 위한 엄격한 규제 때문에 은행들이 오랫동안 꺼려온 영역이다. 다이먼의 이중적인 태도에 월가가 주목하는 까닭이다.
사적 신용 시장은 지난 20년간 폭발하듯 성장했다. 특히 사모펀드가 소유한 기업에 대한 대출 자본은 2006년 이후 100배 넘게 증가해 2024년 7000억 달러(약 965조5100억 원)에 육박했다. 이들은 은행보다 빠른 자금 조달과 유연한 조건을 무기로 은행의 기업 대출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2024년 연방준비제도(Fed)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은 사적 신용 펀드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평균 2~3%포인트 높은 금리를 물었다.

◇ 스스로 걷어찬 기회…'HPS 매각'은 쓰라린 실수


사실 JP모건은 이 시장의 초기 개척자였으나 스스로 기회를 걷어찼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JP모건의 헤지펀드 자회사 하이브리지에서 스콧 캐프닉이 이끌던 사적 신용 부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2012년 '런던 고래' 사건 뒤 강화된 내부 통제와 규제 압박 속에서 캐프닉과 그의 팀은 2015년 10억 달러(약 1조3793억 원) 이상을 치르고 분사했다. 이 회사가 바로 현재 1570억 달러(약 216조5815억 원)의 대출 자산을 운용하며 세계 최대 사적 신용 회사 가운데 하나가 된 HPS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다. 다이먼 최고경영자는 훗날 HPS 매각을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실수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JP모건이 주저하는 사이 경쟁자들은 무섭게 성장했다. 2021년 사모펀드 토마 브라보의 스탬프스닷컴 인수금융(약 30억 달러) 대부분을 아레스와 블랙스톤 등 사적 신용 회사들이 차지한 것은 은행권에 경종을 울린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차입매수(LBO) 시장의 주도권을 잃고 수십억 달러의 부수 수익마저 놓쳤다.

◇ '은행-사모대출' 모두 제공…월그린스 거래로 증명한 새 모델

경쟁에 밀린 다이먼은 자체 대출 사업 재건을 결심했다. 초기 펀드 조성 계획을 접고, 은행이 보유한 1000억 달러(약 137조9500억 원)의 초과 자본을 직접 투입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최근 월그린스 인수금융 거래다. 사모펀드 시카모어 파트너스가 월그린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JP모건은 복합 금융 해법을 제공했다. 월그린스의 전문 약국 사업부 '실즈' 인수에는 실즈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9배에 이르는 고위험 구조의 사적 신용 대출이 투입됐지만, JP모건은 새로운 사적 신용 팀을 통해 골드만삭스, 그리고 과거 자회사였던 HPS와 함께 자금을 지원했다. 이처럼 대출 구조와 위험도에 따라 자체 위험 한도를 설정해 관리하며, 일부는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옥타곤 크레디트 인베스터스와 같은 투자 협력사와 함께 투자한다.

◇ "나쁜 위험, 그러나 거대한 기회"…끝나지 않은 경고


JP모건이 시장 참여를 본격화하면서도 다이먼의 경고는 계속된다. 그는 특히 블랙스톤, KKR 등이 연기금 같은 기관 투자자를 넘어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까지 사적 신용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현상과 함께, 투명성 부족, 유동성 위험, 규제 사각지대 같은 구조상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JP모건 측은 '위험을 알고 있으며, 자체 위험 한도와 규제 당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태도다. 그럼에도 다이먼은 "현재 신용시장은 나쁜 위험"이라고 단언하면서도, 반대로 "이 회사(JP모건)에는 거대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특히 시장 환경이 나빠지면 부실 자산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겠다는 전략을 숨기지 않는다. 위기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겠다는 '월가 황제'의 계산된 승부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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