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는 24% 감소한 반면 미국만 활기...그록·라이트매터 등 대규모 투자 유치 성공

14일 크런치베이스(Crunchbase)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반 반도체 스타트업들은 약 30억 달러(약 4조3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2023년 13억 달러(약 1조9000억 원) 대비 123% 증가한 수치로, 2021년 기록적인 해였던 32억 달러(약 4조6000억 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글로벌 반도체 스타트업 투자는 오히려 감소세를 보였다. 크런치베이스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벤처캐피털의 반도체 스타트업 투자 총액은 415건의 거래에서 105억 달러(약 15조2600억 원)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138억 달러(약 20조 원)에서 24% 감소한 수치다. 발표된 거래 건수 역시 571건에서 415건으로 27% 줄었다.
미국 반도체 스타트업의 대규모 투자 유치는 특히 2024년 하반기에 집중됐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그록(Groq)'은 지난해 8월 블랙록이 주도한 6억4000만 달러(약 93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를 28억 달러(약 4조 원)의 기업가치로 유치했다.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본사를 둔 그록은 AI 최적화 및 컴퓨팅 파워 절감 기술을 개발 중이다.
광학 기술로 AI 칩을 연결하는 스타트업 '라이트매터(Lightmatter)'는 지난해 10월 T. 로우 프라이스(T. Rowe Price)가 주도한 4억 달러(약 58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를 44억 달러(약 6조4000억 원)의 기업가치로 유치했다. 이는 GV가 주도한 1억5500만 달러(약 2253억 원) 투자 라운드 이후 직전 기업가치 12억 달러(약 1조7000억 원)에서 거의 4배 상승한 수치다.
아야르 랩스(Ayar Labs)도 지난해 12월 어드벤트 인터내셔널(Advent International)과 라이트 스트리트 캐피털(Light Street Capital)이 주도한 1억5500만 달러(약 2253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를 10억 달러(약 1조45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로 유치했다. 이 회사는 광학 데이터 전송 기술로 기존의 전기 솔루션을 대체하여 AI 인프라의 효율성과 성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비용과 전력 소비를 절감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적극적인 반도체 투자는 국내 생산 확대를 위한 정책적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지난주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TSMC)는 향후 4년간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5조35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2년 제정된 초당적 칩스 법(CHIPS Act)을 해체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을 통해 정부 인센티브 없이도 반도체 제조 산업을 미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산업 로비단체인 SEMI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제조 능력의 약 70%가 한국, 대만,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를 철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중국은 지난주 AI와 반도체를 포함한 국내 기술 산업에 약 1400억 달러(약 203조5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들어 가장 큰 투자를 유치한 업체는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hangXin Memory Technologies)와 SJ 세미(SJ Semi)로, 두 차례의 투자 라운드에서 총 약 22억 달러(약 3조2000억 원)를 유치했다. 유니속(Unisoc)과 알토세미(AaltoSemi) 등 다른 중국 스타트업들도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AI 반도체 시장 경쟁의 주요 원동력은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다.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은 AI 발전이 실리콘 및 하드웨어 수준의 혁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AI 컴퓨팅 효율성과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다만 반도체 제조 및 설계는 비용이 많이 들고 엔비디아(Nvidia) 같은 대기업이 지배하는 산업이라 신생 기업들의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미국 투자자들은 무역 불확실성 속에서도 AI 반도체가 가져올 수익에 기대를 걸고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