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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트럼프發 무역전쟁 대비 '협상·제재 투트랙' 준비

美와 무역전쟁은 재앙...군사·에너지 협력 확대 제안
실리콘밸리 기업 제재 등 맞춤형 보복도 검토
멕시코式 실용 외교도 주목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집행위원회 본부 밖에서 유럽연합(EU)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집행위원회 본부 밖에서 유럽연합(EU)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박한 관세 위협에 맞서 협상안과 보복 조치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7일(현지시각) EU 고위 외교관 3명의 말을 인용해 EU가 지난해부터 '트럼프 태스크포스'를 가동, 무역 분쟁에 대비한 비밀 계획을 수립했다고 보도했다. EU는 무역 전쟁이 "양측 모두에 재앙이 되고 중국과 러시아만 이득을 볼 것"이라며 우선 협상을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1일 브뤼셀 기자회견에서 "양측에 많은 것이 걸려있다"며 "EU는 단일 시장으로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EU는 미국과의 협력 강화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를 미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U는 또한 군사비 지출 확대와 그린란드에 대한 투자 증대도 검토하고 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11일 브뤼셀에서 "북극 지역의 방위·안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그린란드에서 더 강력한 발자국을 남기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EU는 강경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 BBC는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에 EU는 세 가지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폴리티코는 11일 보도했다.
첫째, 2018년처럼 공화당 지지 지역 제품을 겨냥한 표적 관세다. 당시 EU는 켄터키주의 버번 위스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해 미치 매코널 당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지역구를 압박했다.

둘째, 단계적 보복이다. EU 외교관들은 "특정 조건이나 시점에 맞춰 제재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 2023년 도입된 '반강압수단'을 활용한 실리콘밸리 대형 기술기업 제재다. 다만 EU 외교관들은 "전면적 무역전쟁은 피하고 싶다"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준수하는 선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대화 창구는 제한적이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EU 외교장관들과의 만남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카야 칼라스 EU 외교대표와 전화 통화만 한 상태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도 1월 취임식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지 못했다.

영국도 관세 위협에 대응 중이다. 영국철강협회 개러스 스테이스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미국은 EU에 이어 우리의 두 번째 수출 시장"이라며 "관세 부과 시 4억 파운드(약 7240억 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레이첼 리브스 영국 총리는 "협상이 가능하다고 강력히 믿는다"며 즉각적 보복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선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기존 국제질서와 전통적 보수주의 모두에 비판적이며, 러시아 이념가들과 오히려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러시아의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은 러시아 지도부에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MAGA 지지층의 존경을 받고 있다. 포퓰리스트 우파 연구자인 벤자민 타이텔바움은 "이탈리아의 전후 급진 우파 철학자 율리우스 에볼라가 MAGA 충성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EU 국가들이 멕시코의 실용적 대미 협상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 3일 트럼프 대통령과 45분간의 전화통화에서 무역, 마약, 이민 등 핵심 이슈에서 의견 충돌을 피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지켜냈다. 이 회담에 정통한 관계자는 "트럼프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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